민간에서 가구당 최대 100만원까지 지급받는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기부 독려가 사실상 ‘관제 기부’ 아니냐는 볼멘소리마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사회적 평판을 따지는 공직사회나 기업 차원의 기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여서 관심이 쏠린다.
17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한 시민들은 대체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용돼야 한다”는 취지로 기부를 택했다. 다만 직업에 따라 기부를 결심한 속사정은 달랐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기부를 안 하면 세무조사가 들어올까봐 억지로 기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기부자 명단에 이름이라도 올려둬야 미운털이 박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서모(50·여)씨는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받은 80만원을 기부했다. 서씨는 당장 먹고살기 힘들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기부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기부에 동의해준 두 자녀가 기특해 10만원씩 용돈을 줬다”며 “돈을 받지 않은 게 정부 정책을 비판하려는 뜻은 아니다. (난 기부했지만) 이런 어려운 시기일수록 취약계층에 대한 현금 지급 정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이모(46·여)씨는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운동’을 떠올렸다고 한다. 10만원을 국가에 돌려준 이씨는 “전 세계가 감염병으로 힘든데 정부와 지자체가 무리해서 현금을 나눠주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는 “형편이 좀 나은 국민들이라도 힘을 모아야 한다”며 “평소 모금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나라가 힘들면 결국 나도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부했다”고 덧붙였다.
선별적 지급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기부를 결심한 사례도 있었다. 정부의 현금 지급 정책에 반대하지만 이왕 현금을 줄 거라면 가장 절실한 곳에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100만원을 전액 기부한 50대 여성 구모씨는 “자녀들에게 공짜 좋아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가만히 있어도 정부가 돈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구씨에 따르면 첫째 아들은 기부에 동의했지만 둘째 아들은 전통시장에서 직접 지원금을 사용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일부 자영업자는 세무조사가 두려워 기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부 독려 메시지가 기부를 하지 않을 경우 세무조사에 들어간다는 경고로 들린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20년간 인테리어업을 하고 있는 김모(52)씨는 지원금 100만원을 포기했다. 그는 “업계에선 기부하지 않는 업체만 세무조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까지 돈다”며 “그만큼 다들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직원 인건비도 안되는 100만원 받느니 차라리 안전하게 기부하자’는 자영업자 동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지원금은 안 줘도 되니까 가지고 있는 걸 빼앗지만 말아 달라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기부를 안했다고 해서 세무조사를 들어간다거나 하는 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