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물이 없으면 생태계가 존재할 수 없다. 문명은 물이 흐르는 하천을 따라 형성되고 발전했다. 범람과 가뭄에 대비하는 치수(治水)는 예로부터 정치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마시고 이용하는 물의 양이 충분한지는 논란이다. 1인당 연평균 강수량(2591㎥)이 세계 평균(1만9635㎥)의 8분의 1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들어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과잉 해석이라는 반론도 있다. 물은 갈등과 분쟁을 부르기도 한다. 4대강 사업과 이후 보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수자원공사는 물 처리 후 발생한 이익금을 놓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담=전석운 미래전략국장 겸 논설위원
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한정된 자원인 물을 국가 차원에서 통합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물산업을 미래성장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관리기본법이 2018년 6월 제정되고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지난해 8월 출범한 배경이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와 민간인 전문가 1명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환경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해양수산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등 내각의 장관들이 대거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허재영 국가물관리위원장을 지난 13일 세종시 집무실에서 만났다. 일본 오사카대에서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대전대 교수를 거쳐 2017년부터 충남도립대 총장을 맡고 있다.
-환경부의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가 일부 보의 전면 해체와 상시 개방 등 권고안을 발표한 지 1년3개월이 지났다.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하면서 보 처리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데.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은 일을 한 것이다. 충분한 검토와 토론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이 거의 생략됐다. 미리 정해진 일정에 맞추려다보니 많은 부작용이 생겼다. 4대강 보 처리 방안은 충분히 조사하고 이해관계자 간 토론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기보다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환경부는 4대강 평가 조사단을 구성해 금강과 영산강의 보 처리 방안을 발표하고도 이를 한 번 더 검토해달라며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요청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위원회가 이 문제를 놓고 열심히 토론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논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4대강 보 처리 방안 결론을 내기까지 시간을 너무 끌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다.”
-환경부는 세종보 전면 해체를 권고했지만 세종시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양측 입장을 어떻게 절충할 수 있나.
“보가 없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없는 쪽으로 처리하는 게 맞다. 반대로 존치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해체를 요청하는 분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것이다. 중간 정도의 결론도 낼 수 있다. 평상시에는 열어두고 필요할 경우 수문을 닫는 방안이다. 물 이용 계획, 수질과 생태계 개선 가능성, 비용 대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한다.”
-위원장은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비용편익 분석보다 수질과 생태계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질 개선 기대가 증명되지 않으면 보 철거가 유보된다는 의미인가.
“가능성은 다 열려 있다. 종합적으로 봐서 보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면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 내릴 것이다. 철거하는 게 유리하다면 철거를 권고하게 될 것이다. 미리 결론을 말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계기로 남북 협력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과 관련한 남북 협력사업으로 가능한 것이 있다면.
“북한은 에너지 쪽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에너지보다 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남북 간에 물과 에너지를 주고받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에서 북한이 쉽게 호응할 것 같지 않다. 북한은 에너지 문제도 심각하지만 식량 문제가 더 심각하다. 물과 에너지, 식량을 모두 연계한 사업을 제안하면 북한이 좀 더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남북경협’(경제협력)이라는 말은 있지만 ‘남북환협’(환경협력)은 없다. 물과 에너지, 식량, 유역의 토지 관리 등을 복합적으로 연계한 환협을 제안하면 좋을 것이다.”
-섬진강 물을 용수 처리해 판매하는 수자원공사가 전남 광양시를 상대로 세금 부과 취소 소송을 걸었다. 물 갈등을 조정할 책임이 있는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중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중재는 요청이 들어와야 할 수 있다. 국가물관리위원회 내에 분쟁조정 역할을 하는 물분쟁조정분과가 있다. 이해당사자 간 충돌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위원회가 중재할 수 있다. 그러나 광양시와 수자원공사가 중재 요청을 하지 않는데 위원회가 먼저 나설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댐과 저수지를 포함하면 우리나라에 약 1만8000개 물 저장소가 있다. 평균 수준의 비가 내리면 물 부족을 겪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제는 가뭄이다.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물을 공급하는 데에 집중해 댐을 많이 만들었다. 이제는 수요 관리를 해야 한다. 전기를 아끼듯 물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다. 수원지를 복원하고 지하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노후 상수도 파이프라인을 교체·정비하는 데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몇 년 전 충남 지역에 가뭄이 왔을 때 점검해보니 수돗물 절반이 새더라. 잘 정수한 물을 땅속으로 흘려보내는 건 너무 아깝다. 누수율 5%만 줄여도 댐을 하나 짓는 효과가 있다.”
-작년에 인천에서 ‘붉은 수돗물’로 많은 주민이 고통 받았고, 서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관재(官災)’라고 비판했다.
“관로가 오래됐다는 게 문제다. 노후 관로 교체 작업이 필요하다. 물이 샌다는 것은 외부 균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마시는 물이기 때문에 관로 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2024년까지 노후 상수도 관로 정비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정부가 물산업을 미래성장 산업으로 육성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물산업의 성장 전략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폐수처리 기술, 정수처리 기술 등은 꽤 많이 발달해 있다. 이런 분야를 잘 키워내면 우리가 코로나19에 잘 대처한 것처럼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해수담수화 기술 핵심은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것이다. 담수화 단가가 비싼 건 전기요금 때문이다. 저전력으로 정수처리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한다면 엄청난 시장이 열릴 것이다.”
-물 관리 정책의 기본 목표와 추진 방향, 예산의 중장기 투자 방향, 물산업 육성 방안 등을 담은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은 언제쯤 나오나.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수립은 환경부 장관이 한다.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이를 심의·의결한다. 대개는 최종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심의를 하는데 기본계획은 중간 단계마다 보고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다섯 차례 회의를 했다. 한두 번 회의로 결론내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 환경부와 위원회가 ‘합의된 보고서’를 만드는 게 목표다. 물관리기본법 시행일(2019년 6월 13일)로부터 2년 이내에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늦어도 2021년 6월 안에는 기본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유역별 물관리 종합계획은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1년 이내에 발표하게 돼 있다.”
-국가물관리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성과와 의의를 간략히 말해달라.
“‘국민이 물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물관리위원회가 하는 일이다. 작년 8월 말 출범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4개의 유역별관리위원회가 출범했다. 본격 활동을 시작한 지 6개월 동안 73차례 회의를 열었다. 국가물관리위원회 차원의 회의를 28차례, 유역별관리위원회 차원의 회의를 45차례 각각 가졌다. 간혹 위원회가 뭐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받지만 우리는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국민에게 위원회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도 곧 개설하고 홍보 직원도 채용하려고 한다.”
정리=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