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초강력 제재에 나서면서 불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이 반도체 시장에서 격화하는 양상을 띠자 국내 반도체업계가 긴장하는 분위기다. 단기적인 매출 타격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반도체 시장의 무역 장벽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최근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우선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의 초미세 공정 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했다. 또 미국 기업의 기술을 사용한 제3국 기업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에 “미국의 허가가 있으면 수출이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수출이 쉽게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TSMC와 파운드리 경쟁을 벌이는 삼성전자로선 미국이 TSMC를 끌어들이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대 매출처 중 하나로 꼽히는 화웨이에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지 못하게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TSMC는 지난 15일 1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TSMC의 미국 공장 건설은 아시아 국가에 대한 반도체 의존을 줄이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조치는 화웨이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만들 때 미국 기업인 퀄컴 칩셋을 사용하지 못해도 자체 설계한 ‘기린’ 시리즈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TSMC 덕분이었다. 기린은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해 TSMC가 제작한다. TSMC 역시 미국 장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화웨이가 TSMC와 거래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힌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TSMC의 이런 ‘밀월’ 관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도 애플 등 주요 팹리스 업체 물량을 대부분 TSMC가 가져가는데 미국이 앞으로 자국 기업 물량을 TSMC의 미국 공장에서 만들 것을 요구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요 고객이었던 화웨이에 메모리반도체를 팔기도 어려워졌다. 가뜩이나 미국의 제재 이후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화웨이 매출은 감소세였다. 삼성전자의 경우 주요 5대 매출처에 화웨이가 빠지지 않았지만 올해 1분기는 애플, AT&T, 도이치텔레콤, 소프트뱅크, 버라이즌 등이 5대 매출처에 이름을 올렸다. SK하이닉스도 화웨이가 주요 매출처 중 하나로 전해진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고강도 화웨이 봉쇄 조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고, 관영 언론은 애플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맞불’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정부 측근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화웨이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애플, 퀄컴, 시스코, 보잉 등 미국 기업들을 겨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 긴장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17일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싸우면 관련 무역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며 “장벽이 높아지면 반도체 수출입 자체가 어려워지고 고스란히 기업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체에 영향을 주는 조치”라며 “미국과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김준엽 강주화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