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철저한 그린, 세계가 골프를 즐겼다

입력 2020-05-15 04:01
최혜진이 14일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42회 KPGA 챔피언십 대회에서 1번홀 티샷을 날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때문에 전 세계 골프대회가 중단된 뒤 처음 열리는 정규투어다. 대회는 무관중으로 치뤄지며 총상금 규모는 30억원, 출전 선수는 150명이다. 서영희 기자
“살아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필드로 돌아온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은 모처럼 되찾은 생동감에 만개한 미소를 지었다.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리고 첫 번째 라운드를 완주한 배선우(26)는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제42회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챔피언십 출전자 150명은 14일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파72·6540야드)에서 일제히 호쾌한 샷으로 2020시즌 투어의 재개를 자축했다.

출전자 수 150명은 KLPGA 투어 사상 최대 규모다. 이에 못지않은 취재진·중계진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갤러리를 들이지 못한 필드의 적막을 걷어냈다. AP·AFP·로이터통신을 포함한 미국·유럽·일본 언론들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남녀를 통틀어 세계 최초로 재개된 프로골프 투어의 티오프를 지켜봤다. KLPGA 관계자는 “내외신을 포함해 90개 이상의 매체가 취재를 신청했다. 투어 사상 최다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방역은 승부 못지않은 긴장감 속에서 이뤄졌다. 선수·캐디·취재진·중계진은 이날 적어도 2회 이상의 발열 검사를 받았다. 선수는 라운지로 입장할 때 체온을 재고 문진표를 작성한 뒤 소독을 위한 자외선 살균기 앞을 지나갔다. 선수는 식당에서 1인용 탁자에 각각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식사했다. 일부 선수들은 그 풍경을 놓고 “교실 같다”며 웃었다.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참가선수인 박성현, 이정은과 박채윤, 마스크와 장갑을 낀 캐디들과 조아현. AP뉴시스·연합뉴스·서영희 기자
선수·캐디는 홀을 이동할 때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걸었다. 선수는 경기 전후마다 마스크를 착용했다. 경기 중 착용 의무가 없지만, 조정민(26)·김민지(25)는 마스크를 쓰고 티샷을 했다. 캐디는 경기 중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갤러리 없는 필드의 유일한 관전자인 취재진은 미디어하우스를 가득 채웠고, 코스로 입장할 때마다 체온 측정소에서 발열 여부를 확인했다. 취재는 1번·10번 홀의 티샷 지점에서만 허용됐다.

필드의 적막, 복잡한 출입 절차는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돌출한 변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다른 분위기는 경기에 영향을 미쳤다. 배선우는 적막의 생경함을 체감했다고 한다. 그는 “선수의 좋은 샷이 나오면 갤러리는 박수를 친다. 선수는 때때로 갤러리의 반응으로 공의 그린 안착 여부를 짐작한다. 이런 반응들이 없어 선수들도 어색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배선우는 보기 없이 버디 5개를 쓸어 담고 5언더파 67타를 기록해 김자영(29)·현세린(19)과 함께 공동 선두로 1라운드를 완주했다. 2016년 제38회 KLPGA 챔피언십 우승자인 배선우는 4년 만에 정상 탈환을 조준하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최혜진(21)은 7번 홀(파5)에서 이글을 잡고도 무관중으로 머쓱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는 경기를 마치고 “이글을 잡았는데 인사할 곳이 없었다. 혼자 좋아하면서도 어색했다”고 말했다. 최혜진은 3언더파 69타를 기록한 공동 7위에 올랐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주력하는 세계 톱랭커들은 대체로 부진했다. 랭킹 3위 박성현(27)과 10위 이정은6(24)은 나란히 1오버파 73타를 쳐 공동 59위에 머물렀다. 박성현은 “16번 홀에서 단비 같은 버디를 쳤지만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랭킹 6위 김세영(27)은 4번(파4)·7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치고 스코어카드에 2오버파 74타를 적어냈다.

양주=김철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