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은 2017년 2월 노르웨이에서 열린 한 문학 행사에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 18)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의 탄생 스토리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부터 내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 있었다.”
한강이 그렇듯 많은 한국인에게 5· 18이나 광주는 복합적인 의미를 띤다. “폭력과 존엄”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5·18 40주년을 맞은 올해 서점가엔 ‘5월 광주’의 뜻을 기리는 신간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는데, 소설 에세이 학술서 등 장르도 다양해 독서가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요즘 서점가에는 ‘5월 광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사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나온 관련 신간 표지. 다산책방 제공
문학 분야 신간으로는 소설가 정도상의 장편 ‘꽃잎처럼’(다산책방)이 주목할 만하다. 소설의 배경은 시민군의 마지막 결사 항전이 펼쳐진 전남도청. 정도상은 26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도청에 머물던 시민군이 마주한 두려움의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는 지난 1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때 그 사람들이 왜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었을까 하는 자문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이어 “5·18을 취재하고 공부하면서 이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5·18은 광주와 전남 지역 민중 민주운동의 큰 흐름 안에 놓여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순간의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빨간소금 제공
5·18의 참혹했던 상황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공간과 높이”에서 복원한 작품도 있다. 5·18 당시 광주관광호텔 호텔리어였던 홍성표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안길정씨가 집필한 ‘호텔리어의 오월 노래’(빨간소금)다. 광주관광호텔은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서 있다. 80년 당시 광주에서 전일빌딩(10층) 다음으로 높은 건물이었다.
책에 실린 증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5월 27일 새벽, 전일빌딩을 향해 이뤄진 헬기 사격이다. 당시 홍씨는 공수부대를 피해 호텔 6층에 피신해 있었다. 홍씨는 이렇게 말한다. “호텔 건너편 전일빌딩 쪽을 보니 광주우체국 방향으로 전일빌딩 위를 향해 섬광이 연속해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공중에서 날아가는 탄환이었다. 굉음이 들려왔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출간을 앞둔 책 중 기대작으로는 비평논문집 ‘무한텍스트로서의 5·18’(문학과지성사)을 꼽을 수 있다. 18명의 저자가 쓴 글 19편을 묶은 이 책은 5·18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작품이다. 출판사는 “5·18에 대해 아직 발설되지 않은 진실의 영역을 성찰하려는 한국 사회의 지적인 노력들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꼼지락 제공
이 밖에 밀레니얼 세대 12명이 생각하는 광주의 의미를 담은 ‘요즘 광주 생각’(꼼지락),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상웅이 쓴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두레) 등도 눈여겨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