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1호 위반’ 장준하 유족에 7억8000만원 배상 판결

입력 2020-05-14 04:07
지난해 8월 경기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추모공원에서 열린 故 장준하 선생 44주기 추모식 장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뉴시스

유신 시절 독재정권과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했던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이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게 됐다. 장 선생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7년여 만에 나온 손해배상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부장판사 김형석)는 장 선생 자녀 등 유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7억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긴급조치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긴급조치 1호 발령 행위와 장 선생에 대한 수사, 재판, 징역형 집행은 모두 헌법에 반하는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히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 행위 자체만을 판단해 ‘정치적 책임’만을 진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이는 정의 관념에 반한다”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제시됐던 대법원 판단을 정면 비판한 것이다. 대법원은 2015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를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 규정하고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장 선생은 1974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유신헌법 개정 서명운동을 추진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데 따른 판결이었다. 장 선생은 1974년 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이듬해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2009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법은 2013년 무죄를 선고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