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간청에 ‘교회에 나가주기로’ 했다가 훈련 받고 회심

입력 2020-05-15 00:08
지난 10일 김병수 집사 가족이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 본당 앞에서 함께했다.

저는 중고등부까지 교회를 다녔습니다. 군대에서도 잠깐 교회를 다녔지만, 전역 후 세상과 다를 것 없는 삶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결혼 후 장인어른의 갑작스러운 병환을 계기로 처가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주일날 해장국도 안 끓여 놓고 교회로 향하는 아내에게 잔소리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아니, 가까운 교회도 많은데 꼭 서울에서 1시간 거리나 되는 순복음삼마교회까지 가야 하냐. 헌금도 적당히 내라. 술값도 모자라.” 지금 생각해보면 가정이 깨지지 않고 유지된 것만 해도 하나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처형인 하금자 집사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교회 일에 앞장서 봉사하고 주님을 정말 사랑했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했습니다. 때마침 교회가 파주 운정으로 이전했고 처가 식구들은 이참에 공기 좋은 파주로 이사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파주에서 장모님과 처형 등 일곱 식구의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지인들은 저를 뜯어말렸습니다. “한번 서울 떠나면 다시 들어오기가 힘들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 안 한다. 화장실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2015년 11월 간절한 소원이 있다는 아내의 말에 ‘교회에 나가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년간 주일예배만 참석했습니다. 처형은 백혈병 합병증 때문에 난청까지 왔습니다. 보청기를 끼고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담임목사님의 사모님인 박영숙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수요성령불기도회에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눈앞에서 보청기를 빼고 소리가 잘 들리는 기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아, 정말 하나님이 일하셨구나.’ 입술로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10주 새가족 교육을 받았고 ‘영적인 노숙자’ 신분을 끝냈습니다. 매일 극동방송을 들었습니다. 기도와 찬양, 말씀의 갈급함을 느껴 모세오경 계절 학기를 수강했습니다.

2018년 3월 모세오경 창세기 정규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김화영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나약한 저의 영적 모습을 봤습니다. 남성연합 셀 모임에서 기도회도 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찬송가를 60곡 이상 외워 부르는 모습을 보고 도전을 받아 꾸준히 연습했고 지금은 40곡 정도를 외웁니다. 창세기 훈련이 끝날 무렵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화생방 훈련하듯 땀과 눈물, 콧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저 자신이 죄인인 것을 토설했습니다. 그렇게 인격적인 성령님이 찾아오셨고 방언을 선물받았습니다. 기도에 힘이 실리면서 삶의 우선순위도 바뀌었습니다.

“세상 부귀영화와 즐겨하던 모든 것 주를 믿는 내게는 분토만도 못하다.” 이 찬양이 제 마음을 파고들었고 술과 담배, 게임, 세상 모임을 모두 끊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10단계’ 훈련을 받으며 신앙의 로드맵을 잡았습니다.

직장 때문에 공휴일마다 열리는 사경회에 참석할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 중에 “네가 ‘만나’로만 살 수 있겠니”라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저는 즉시 “네, 주님”하고 답했습니다.

2018년 11월 식품회사 이사직을 그만두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장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광야의 혹독한 물질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1년 동안 성령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낙심 근심 걱정 두려움이 떠나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 소망, 감사가 충만해졌습니다. 광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자가 됐습니다.

지난해 믿음의 동역자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장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거룩한 청지기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담임목사님의 차량을 운전하며 사역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