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복 입은 시민

입력 2020-05-14 04:01

옛날 군대는 지금의 군대보다 더욱 군대다웠을까? 1980년대 초에는 군내 인명손실이 1년에 2개 대대 병력이라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연간 900명 이상 군내 사망자가 발생했다. 최근 5년 동안엔 70∼80명 수준으로 내려가 있다.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탈영하는 군무이탈 건수도 95년에만 해도 연간 2000명을 넘었지만, 2015년 291명, 지난해 104명으로 감소했다.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징계 건수가 많은 군이지만 최근 5년간에는 약 33% 감소했다. 물론 통계 숫자가 사안의 경중까지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최근의 몇몇 사고만으로 군을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폄하할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투명성이 증대되면서 사소한 사고까지 모두 외부로 공개됨에도 군의 사건사고는 급감하고 있다. 특히 거의 3년마다 발생하던 총기 사고 등은 2014년 이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군은 60만명에 가까운 장병들이 국토방위를 위해 합법적으로 무력을 관리하는 집단이다. 몇몇 개인의 일탈을 엮어서 조직 전체를 만신창이로 몰아가거나, 자율과 책임의 선진병영문화를 정착시키려는 과정을 군 기강 해이 조장으로 오도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군도 엄정하게 군 기강을 확립하고, 국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들은 소중한 일상을 뒤로하고 국가의 부름에 응한 젊은이들이다. 과거와 같이 통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 모병제 국가는 물론 징병제 국가까지 대부분 허용하고 있는 병사들의 휴대폰 사용 문제로 군이 곧 무너질 것 같다는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병사들의 복무 적응에 도움이 되고 병영 내 소통과 자기계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이미 2년 이상의 시범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보완해 오고 있지 않은가.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이다. 군복을 입었지만 그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부여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김기돈 예비역 육군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