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놓고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법안 처리 지연 수단으로 악용되는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미래통합당은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고,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법사위 힘빼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주장했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제가 세월호 참사 당시 봉사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법안을 2016년 발의했는데 아직도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며 “토론도 표결도 없이 그냥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2년 동안 논의 한 번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은 폐지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는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논의에 불을 지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11일과 12일 연이어 라디오에 출연해 “법사위가 법안을 발목 잡는 등 체계·자구 심사권을 악용해 왔다. 이제 법사위를 ‘게이트키퍼’ 수단으로 악용하는 악습을 끊을 때가 됐다”며 거듭 강조했다.
체계·자구 심사권은 국회법에서 정한 법사위 고유 권한이다. 소관 상임위원회가 법안 심사를 끝내면 법사위로 보내 또다시 심사를 한다. 법사위를 통과해야 본회의에 올라갈 수 있다. 법안이 헌법이나 다른 법률과 어긋나는 부분이 없는지, 문구가 명확하게 쓰였는지 등을 다시 점검하는 것이다. 이 권한은 1951년 2대 국회에서 도입됐다. 국회에 법률 전문가가 희소했던 시절 법안 심사를 전문적으로 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각 상임위 역할이 세분화·전문화하고 국회에 다수의 법조인들이 진출하면서 체계·자구 심사권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소관 상임위에서 충분한 심사를 거쳐 올라왔는데도 쟁점 법안이라는 이유로 처리를 지연하거나 체계·자구 심사라는 기능적 권한을 넘어 법안 내용 자체를 문제 삼으면서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통합당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경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양원제가 아닌 단원제”라며 “법안 지연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국회 통과 법안 중 위헌법률이 1년에 10여건 되는 상황에서 체계·자구 심사권을 없애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반대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