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입력 2020-05-14 04:04

선택의 시간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쪽 선택지는 완벽히 준비되지 않음이 명확한 변화다. 대안은 제시할 수 있지만 완벽하지 않음으로 인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저쪽 선택지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있되 ‘도대체 뭘 하고 있나’는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교육 당국은 어느 쪽이든 욕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변화를 골랐다. 온라인 개학이다. 온라인 수업에 대한 요구는 과거에도 많았다. 이를 활용한 새로운 교육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면적인 온라인 수업 시도는 먼 훗날의 일로 미뤄져 있었다. 전격적인 결정에 불만이 쏟아졌고 교육부 내에서도 우려했다.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한다는 게 말이 되나.

4교시 수업이라는데 30분도 채 되지 않아 “끝!”이라며 책상에서 노트북을 덮는 아이의 모습을 매일 보는 부모는 속이 터진다. 옆에 기대고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아이의 과제를 도와주는 일상은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피곤에 지쳐 잠든 아이를 지켜보는 안타까움과는 사뭇 다른 감정을 촉발시킨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다.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감염 우려로 등교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확산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대로 있었어야 했을까. 가슴이 답답하고, 다소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온라인 개학은 어느새 평범한 일상이 됐다. 학교와 교사, 학생과 학부모 모두 이전과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나이가 적지 않은,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교사들에게도 온라인 개학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들을 향해서는 대개 ‘십수년째 같은 교재로 같은 방식으로 교단에 서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들이 한참 어린 후배 교사들에게 물어물어 동영상 강의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그 동영상 강의를 봐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이나 눈물겨운 일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월급 받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에게 이 상황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직장인들도 전혀 다른 성격의 업무에 배치되면 몇 주, 몇 개월은 고생하지 않는가. 깔끔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전국의 교사들은 벌써 엄청난 양의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지난달 말 기준 교사 1인당 5건 안팎이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니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K방역’의 원동력은 메르스 당시 허둥지둥했던 모습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 어설픔을 교훈으로 오늘의 방역 시스템을 만들었듯이 지금의 문제 많은 온라인 개학을 통해 향후 우리 교육의 토대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학계에서나 논의되고 개념화되고 적용 가능성을 타진해보던 ‘블렌디드 러닝’ ‘플립 러닝’ 등의 교육방식을 초보적이지만 전국의 모든 학생과 교사가 체험하고 있다. 계획했던 시기도 아니고 준비를 마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시작됐다. 그 시작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건 이제부터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온라인 강의의 해킹 위험성 등 보안 문제 외에도 초상권·저작권 문제 등에 대한 법·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 맞춤형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의 과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줄곧 온라인 개학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얘기였다. 앞으로도 지적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다만 온라인 개학을 통한 새로운 경험이 우리 교육 혁신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얘기(국민일보 5월 1일자 1·4면 참조)는 공감한다. 현장의 좌충우돌을 발전의 토대로 삼는 교육의 모습을 기대한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