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예결위원장 쟁탈전 치열
상임위원회 활동은 국회의원 의정활동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국회의원은 1개 이상 상임위에 소속돼 입법과 국정감사, 예산안 및 결산안 심사를 담당한다. 상임위원들을 대표하는 것이 상임위원장이다. 상임위원장은 여야 위원들이 예민하게 대립하는 법안을 조정하고, 주요 의사일정을 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어떤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눠 가질지는 여야 협상을 통해 정한다. 각 당 원내대표가 선수(選數)와 나이, 전문성을 고려해 상임위원장을 배정한다.
통상 3선 의원이 맡는 상임위원장은 4선으로 가기 위한 ‘스펙’이 되기도 한다. 알짜배기 상임위로 분류되는 법제사법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쟁탈전은 특히 치열하다. 각 상임위를 거친 법안들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갖는 법사위원장은 ‘상원의장’으로 불린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결위원장도 핵심 보직이다.
법사위원장은 이번 원 구성 협상에서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맡는 게 관례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개혁 등 문재인정부 후반기 개혁입법 처리에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법사위원장직을 가져오겠다는 각오다. 법사위원장을 미래통합당에 넘긴다 하더라도 법안 체계·자구 심사 권한을 폐지하거나 법안의 법사위 계류 시한을 정하도록 국회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통합당은 177석 거대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반드시 법사위원장을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상임위원장은 국회의원 누구나 희망하는 ‘꽃 중의 꽃’이지만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 만큼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도 남다르다. 상임위 회의를 중계하는 방송을 보면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외치는 가운데 상임위원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이들을 말리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이처럼 상임위원장은 여야 갈등을 효과적으로 중재해야 하고, 회의 진행에 불만을 표하는 의원들을 설득해가며 회의를 원만하게 이끌어야 한다.
특히 여야가 자주 충돌하는 법사위나 예결위, 운영위원회에서 위원장의 역할은 더욱 어렵다. 법사위는 지난해 검찰 개혁 이슈로 가장 큰 진통을 겪었던 상임위다.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소속 여상규 위원장이 조 전 장관의 답변을 무리하게 끊는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검찰 국감 때는 여 위원장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 수사에 대해 “검찰이 손댈 일이 아니다”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법사위원장 자격이 없다”고 소리쳤다.
상임위에서 빚어진 갈등이 국회 일정 자체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감에서 강기정 정무수석이 ‘버럭’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일로 운영위뿐 아니라 예결위, 패스트트랙 협상 등이 줄줄이 파행을 겪었다. 민주당 소속 이인영 운영위원장은 “강 수석이 당일도, 그 다음날도 사과했는데 그걸로도 안 된다고 한국당이 말을 바꾸면 어떡하냐”며 난감해했다.
지난해 8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민주당 소속 홍영표 정개특위 위원장이 공직선거법 개정안 표결을 밀어붙이자 나경원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 여럿이 홍 위원장을 에워싸며 압박했다. 이후 예결위와 외교통일위원회 회의도 무산됐다.
예결위는 통합당 소속 김재원 위원장 특유의 깐깐한 스타일로 인해 자주 마찰을 빚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국가예산사용권을 백지수표로 사용하려 한다” “빚잔치를 하려고 한다”고 제동을 걸며 여당과 대립했다.
“보건복지위가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야당을 잘 만나서입니다.” 복지위 민주당 간사 기동민 의원은 복지위가 일 잘하는 상임위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 통합당 김세연 이명수 위원장과 간사 김명연 의원의 공을 꼽았다. 기 의원은 “김명연 간사가 의사일정에 전폭적으로 협조해줬고 위원장도 이를 존중해주면서 기본적으로 상호 신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의원들에게 호평을 받은 상임위원장들은 “상대편 말을 들어주는 것이 비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데이터 3법과 선거구 획정안, 민식이법 등 쟁점 법안을 다수 처리한 민주당 소속 전혜숙 행정안전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저는 회의에서 대놓고 야당 의원 편이라고 한다”며 “야당 의원들이 ‘그래도 위원장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생각을 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반기 기획재정위원장을 맡았을 때 두루 좋은 평을 받았던 정성호 민주당 의원도 “발언시간이 지나도 야당 의원은 덜 제지하고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며 “여당 의원들은 회의 진행 방식에 불만이 있더라도 결국 법안 처리라는 목표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아니까 믿고 따라줬다”고 말했다. 김세연 복지위원장도 “여야 어느 쪽 의견도 100% 반영될 수 없다. 양쪽에서의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의원들이 꼽는 상임위원장의 최고 덕목은 ‘중립’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상임위원장은 절대 안 된다. 위원장이 특정 방향을 갖고 회의를 진행하면 싸움만 벌어질 뿐 합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통합당의 한 의원도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여야 간사가 해야 할 역할”이라며 “간사 합의를 바탕으로 양측 충돌을 최소화하며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상임위원장”이라고 했다.
이가현 김이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