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미 아동권리보장원장 “n번방 사건 아동 보호받을 권리 침해당해”

입력 2020-05-16 04:02
윤혜미 초대 아동권리보장원장이 지난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권리보장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던 8개 아동 사업을 통합해 운영하는 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은 지난해 7월 출범했다. 최현규 기자
정부의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출범한 아동권리보장원은 입양과 아동자립, 실종아동, 아동학대, 아동돌봄 등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던 8개 아동 사업을 통합해 운영함으로써 아동 생애 주기에 따른 정책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지원하기 위한 기관이다. 예컨대 가정에서 학대받은 아동 중 부모와 분리가 필요한 아동은 가정위탁 등의 보호 서비스로 연계된다. 보호가 장기화할 경우 보호 종료에 대비해 자립 기반 마련을 도와주는 등 아동에 대한 각종 서비스가 분절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가정의 달을 맞아 아동권리보장원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월에는 어린이날(5일), 입양의 날(11일), 가정위탁의 날(22일), 실종아동의 날(25일)이 몰려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각종 기념식과 행사가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윤혜미 초대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이 부분을 안타까워했다. 윤 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제 막 출범한 기관으로서 계획한 사업들을 야심 차게 진행하려 했는데 코로나19로 많은 사업이 지연됐다”면서 “생활방역으로 전환되고 개학도 점진적으로 예정돼 있어 후속 프로그램과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면 및 방문 서비스가 중심인 아동복지 서비스의 특성상 코로나19가 서비스 제공에 있어 많은 난제를 던져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와중에도 아동권리보장원은 부모가 돌보기 힘든 가정의 아동에게 긴급돌봄을 제공하고, 아동학대 고위험 가정에 대해선 제한된 범위 내에서 방문을 통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윤 원장은 코로나19 발생 전후의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급감한 부분을 예의주시했다. 가정 내 학대가 전체 아동학대의 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아동이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사진=최현규 기자
그는 “지난해 1~3분기 8015건에 달하던 아동학대 신고가 올해 같은 기간 7363건으로 600건 이상 줄었다”며 “개학이나 아동복지시설 개원이 미뤄지면서 신고 의무자인 교사나 시설 종사자의 학대 의심 신고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 원장은 “아동학대는 신고가 있어야 기관의 개입이 가능해진다”며 “주변에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으면 적극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학대뿐 아니라 입양과 가정위탁, 실종아동 부문에서도 장기적인 사업이 추진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보호 대상 아동을 가정 안에서 일정 기간 보호해주는 ‘전문가정위탁제도’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올해 별도 예산을 마련할 방침이다.

입양과 관련해선 지난 1월부터 시작한 재외공관의 유전자 등록 서비스를 이어갈 예정이다. 재외공관 유전자 등록 서비스는 국외 입양인이 한국을 방문하지 않아도 재외공관을 통해 유전자를 채취, 등록함으로써 친생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실종아동 가족에게 전단지, 현수막 등 찾기 물품을 지원하고, 장기 실종 가족에게 심리상담 프로그램과 실종아동 수색 활동비 등을 제공하는 사업도 주요 업무다.

아동에 관한 각종 전문 자료의 생산과 공유 역시 윤 원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윤 원장은 “체계적으로 수집된 자료를 연구자들과 공유해 아동 정책의 실태를 분석하고, 더 정교하고 효과적인 아동 정책 개발을 이끌어냄으로써 아동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른바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윤 원장은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는 데에서 강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자신의 신체 사진을 보낸 아동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대해 윤 원장은 “성범죄에서 책임은 언제나 성인에게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아이들은 자신의 사진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사진을 보낸 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태”라며 “순진한 생각에 시작했다가 (범죄에) 엮여 어디에 말도 못 하고 이용당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보호자에게 알려 더 큰 피해를 막는 게 중요한데 부모에게 야단 맞을까 무서워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며 “평소에 아동과 부모가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아동이 피해 사실을 말할 경우 절대로 아동의 잘못이 아님을 얘기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 관련 기관 및 성범죄 관련 기관과 연계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 학대 예방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사진=최현규 기자
‘아동권리보장원이 관리하는 아동이 몇 명이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윤 원장은 “관리 대상 아동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취약계층이나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가 우선적인 관리 대상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립 지원 서비스는 시설 보호나 가정위탁이 종료된 특정 아동에게 제공되지만 아동학대 예방과 돌봄 사업은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며 “세상에 나온 모든 아동이 행복하고 존중받으며 자기 주도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아동권리보장원이 가진 핵심 가치”라고 했다.

윤 원장은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됐음에도 합계출산율이 1명도 채 안 되는 대한민국에서는 한 아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며 “부모가 실직하거나 가정이 해체돼도 아동이 위축되지 않는 사회, 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상관 없이 공평한 출발이 보장되고 낙오나 차별 없이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