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개선 입법이 필요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이 여전히 위헌 시비에 휘말려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개정안엔 그간 금지되던 국회의사당과 국무총리 공관, 법원 주변 집회·시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청사·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는 금지한다’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다. 시민단체와 여권에선 ‘100m’ 제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찰은 스포츠 종목 세계신기록을 예로 들며 반박하고 있다.
1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대안으로 마련한 집시법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전체회의에 계류됐다. 여당 의원들은 지난달 29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이 헌재 결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헌법소원을 제기한 저의 의도와 굉장히 다른 개정안이 나와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여권에서 위헌성을 지적하는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집시법 11조에서 명시한 ‘100m’ 제한 규정이다. 헌재는 2018년 5~7월 옥외집회 및 시위 금지 장소를 규정한 집시법 11조 가운데 국회와 각급 법원(11조1항), 국무총리 공관(11조3항) 인근 100m 이내 집회금지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100m 규제 기준의 위헌 여부는 검토하지 않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질문이 쏟아지자 “투척 경기에서 세계기록을 감안한 것”이라며 100m의 유례를 설명했다. 민 청장은 “창 같은 경우엔 세계기록이 98m 정도 나오고 해머는 84m 나온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위험한 물건을 던졌을 때 도달 가능한 거리가 100m쯤”이라며 “과거에 돌멩이 등이 많이 투척이 됐을 때 이 정도 거리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미대사관을 향한 위험물 투척 사건을 비롯해 월담 시도, 에워싸기, 기습점거 시도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집시법에서 ‘집회절대금지구역’으로 100m가 제시된 것은 1989년 3월 법 개정 때부터다. 민주화 이후 당시 집회와 시위의 금지 사유가 공공 안녕에 대한 직접적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로 한정됐고, 200m였던 집회금지구역이 100m로 완화됐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100m 금지 조항이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률적으로 100m만 제시하는 것은 경찰의 행정편의주의적 성격이라는 것이다.
실제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사당 등은 건물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곳에 담장이 설치돼 있어 일률 적용하는 것은 규범의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한 헌법소원도 제기된 상태다.
경찰에선 입법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헌재가 주문한 법률개정 시한은 지난해 12월 31일이었다. 올 들어 집시법을 놓고 충돌하는 일은 부각되지 않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면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게 검·경의 입장이다.
집시법의 효력이 상실된 채로 약 5개월이 지나면서 검찰은 1심 재판 중인 사건은 공소 취소하고 항소·상고심 계속 중인 사건은 선제적으로 항소 및 상고 취하를 지시하고 있다. 원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 구형을 지시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집시법 11조1항과 3항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새로운 공소유지를 적용해야 할 사건을 100건 미만으로 집계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