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세우는 코/절대 안 숙이는 목/내 멋 자유/I got no limit(난 한계가 없지).’
지난 1년여 간 대중 앞에 선 조규성(22·전북 현대)의 모습은, 그가 즐겨 듣는다는 힙합 뮤지션 코드 쿤스트의 곡 ‘bronco’ 가사와 꼭 닮았다. 무명이었던 그의 주가가 1년 새 한계를 모르고 올라서다. 일개 대학 축구선수였던 그는 지난해 K리그2 FC 안양의 대표 공격수로 자리매김했고, 올 초엔 태극마크를 달고 득점을 올려 김학범호가 아시아 챔피언이 되는 데 기여했다. 지난 8일엔 K리그1 최강팀 전북의 녹색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2020 시즌 개막전에 ‘무려’ 선발 출전했다. 한국 축구 레전드 이동국(41)을 벤치에 앉히고서다.
가사와 닮은 건 급성장한 커리어뿐만이 아니다. 연말 K리그 대상 시상식에 다소 독특한 정장을 입고 등장한 그의 ‘힙함’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넘긴 올백 머리에 골반까지 내려오는 흰색 티, 통 넓은 바지를 차려 입은 ‘멋’은 천편일률적인 드레스코드들 속에서 단연 튀었다. 그라운드에서도, 인스타그램 속 사진에서도 그의 개성은 흘러 넘친다. “올백 머리에 ‘왁스를 뺏어야 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근데, 99명이 욕해도 단 1명이라도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알아주면 그걸로 만족하는 편이에요.”
색안경을 끼면 그가 자만하거나 콧대만 높은 선수일 거라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조규성의 단단한 내면을 칭찬한다. 광주대 은사인 이승원 감독은 ‘성실 그 자체인 선수’로 그를 기억했다. 김형열 안양 감독도 ‘본인이 무지하게 노력해 어딜 가서도 해낼 수 있는 선수’라고, 수차례 장점을 늘어놨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돋보일 수 있는 비결은 정립된 본인만의 가치관 덕이다. 조규성은 돈이나 명예 같은 전통적 성공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 축구를 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서다. 성장 환경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조규성에 영향을 미친 건 독서와 인간관계다. 승려 ‘혜민’의 책들을 거의 대부분 독파하면서는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또 광주대 1학년 땐 테니스 수업에서 래퍼 도빈을 만나 ‘소울메이트’가 됐다.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도빈 형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의지할 만한 인생의 동반자에요.”
전북에서 조규성은 또 한 번 성장하고 있다. 그는 “첫 훈련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니 하프라인 위에서 볼 돌리는 레벨이 달라 왜 전북 공격이 ‘닥공’인지 바로 체감했다”고 상기했다. 국가대표 선배들의 움직임과 훈련 태도도 큰 귀감이 된다. “(최)철순이 형 운동량이 너무 많아 ‘나이 들어서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난 똑같은데?’라고 해서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으면 롱런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이)동국이형은 ‘체력 안배하고 타이밍 맞춰서 뛰어다니라’고 말해주시는데, K리그 탑급의 골대 주변 침착함과 골 결정력을 배우고 싶어요.”
이동국도 그런 후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동국은 “문전 앞의 쓸데없는 움직임만 고친다면 가능성 많은 선수”라면서도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선수를 너무 많이 봤고, 나조차도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변질돼 더 큰 선수가 되지 못했다. 규성이는 지도자들의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여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화려한 용모, 준수한 축구실력, 단단한 내면. 여기에 ‘개인의 행복’에 집중하는 ‘90년생’의 시대정신까지. 이동국이 세기말 ‘신세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이 됐던 것처럼, 조규성도 ‘90년생’의 정서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까. 2020 K리그1에서 보일 그의 퍼포먼스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