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경비원 사망… “특정 개인·아파트 문제 아냐”

입력 2020-05-13 04:05
한 소년이 12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에 마련된 최모 경비원의 추모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달 입주민과 주차 관련 갈등을 겪은 뒤 지난 10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뉴시스

주민 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사건과 관련해 시민·노동단체들이 가해자 엄정처벌과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과 ‘경비노동자 이만수열사 추모사업회’ 등은 12일 강북구 우이동의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원 최모씨를 기리는 추모회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석한 경비노동자 김인준씨는 “2014년 압구정 아파트에서 입주민 폭언을 못 이겨 사망한 이만수씨와 함께 근무했는데, 이런 갑질이 아직도 이어진다는 게 원망스럽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비원들이 주민들에게 대우받는 노동자로 생활하게 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신하나 변호사는 “경비노동자 근로조건에 대해 반성하고 사각지대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만수열사 추모사업회 김형수 회장도 “복지제도가 책임지지 못하면 경비원들은 계속 모멸감과 폭력을 참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이번 죽음이 큰 울림이 돼서 공생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식에는 당초 참석할 예정이었던 유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최씨 유가족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가해자가 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끝인데, (계속 부인만 하니) 유가족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추모회 및 기자회견 시작 전 아파트 입주민들의 반발로 한동안 실랑이가 일기도 했다. 입주민 A씨는 “왜 우리 땅에 허락 없이 들어오느냐”며 추모회 진행을 막았다. 추모회는 예정된 시간에서 18분이 지연됐다. 장소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 경비실 앞에서 아파트 밖으로 옮겨 진행됐다.

앞서 지난 10일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50대 남성 최씨가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21일 아파트단지 내 주차 문제로 주민 심모씨와 시비가 붙었다. 심씨는 최씨를 폭행한 뒤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 경비 일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최씨는 상해 혐의로 심씨를 고소했지만 고소인 조사를 받기 전에 숨졌다.

경찰은 참고인 조사와 현장조사를 대부분 완료했다. 이번 주 중으로 심씨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서울 강북경찰서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혐의를 특정해 추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씨는 “유가족 및 일부 주민의 주장은 허위다. 맞고소를 하겠다”며 가해 행위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