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내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의 최초 개설자 ‘갓갓’은 경찰 마라톤 조사에 부인으로 일관하다 경찰이 수집한 결정적 증거들을 접하고는 범행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범 검거에 성공한 경찰은 n번방 운영과 성착취물 제작·유포·소지에 가담한 공범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텔레그램 n번방 사태가 촉발된 이후부터 갓갓 추적에 수사력을 집중해온 경북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지난달 말 경기도 안성에 사는 문모(24)씨를 갓갓으로 특정하고 압수수색과 수차례 소환조사를 진행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문씨의 신분은 대학생이었다. 지난해 2월 잠적한 이후 지난 1월 잠시 n번방이 아닌 텔레그램 내 다른 성착취물 대화방에 모습을 드러냈던 문씨는 자신을 수능시험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생인 것처럼 설명했었지만 이는 경찰 추적 작업에 혼선을 주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씨는 경찰 소환조사 초기부터 “나는 갓갓이 아니다”며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일 소환조사에서도 버티던 그는 ‘마라톤 조사’가 이어진 당일 오후 늦게 범행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이 문씨를 갓갓으로 특정하기 위해 그동안 축적해온 증거들을 들이밀며 추궁을 이어가자 더 버티지 못하고 자백한 것으로 보인다.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즉시 문씨를 긴급체포하고, 이날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북경찰청은 이번 주 중으로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문씨에 대한 신상공개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다.
갓갓 추적 작업을 벌여온 경찰은 이달 초부터 문씨 검거가 임박했음을 여러 차례 시사해 왔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4일 “(갓갓 검거를 위해) 그동안 의미 있는 수사 단서들을 상당히 확보했고, 종합적으로 분석하면서 용의자 특정과 입증을 위한 증거 자료들을 선별해가는 상황”이라며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경북경찰청은 우선 문씨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문씨는 텔레그램 내 ‘n번방’이라 불리는 8개의 대화방을 만들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다. 특히 제작된 성착취물 중 다수는 아동·청소년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조주빈(25)의 ‘박사방’ 같은 텔레그램 내 다른 성착취물 대화방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문씨는 주로 경찰을 사칭해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수위가 높은 사진을 올린 피해자를 물색한 뒤 ‘음란 게시물 신고가 접수됐으니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조사에 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었다고 한다. 신원 확인을 위해 필요하니 신체 사진 일부를 보낼 것을 요구하고, 점차 수위를 높여갔다. 피해자가 뒤늦게 덫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그동안 알아낸 신상정보와 성착취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또다른 성착취물을 보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문씨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으로 범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월 ‘와치맨’이라는 닉네임을 쓰던 전모(38)씨와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문씨는 범행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일탈”이라고 답했었다.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미안해. 이제 안 할게”라고 답하면서도 “아직 연락하는 피해자가 있느냐”는 추가 질문엔 “있을 걸”이라고 답했다. 잠적하기 직전까지도 일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범행이 지속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난 1월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시 등장한 문씨는 “내 제자(와치맨 전씨)가 잡혔다고 해서 분위기를 보러 왔다”며 “나는 잡히지 않는다”고 경찰을 조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만약 내가 경찰에 잡히면 갖고 있는 자료를 다 유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도 있다. ‘박사방’ 조씨와 나눈 대화에서는 “피해자를 한 대화방에 초대한 뒤 한 명이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나머지 피해자에게 더 가혹한 학대를 가했다”며 자신의 범행 수법을 자랑스레 설명했었다.
경찰은 n번방 개설·운영 및 성착취물 제작·유포·소지에 가담한 공범들에 대한 수사도 병행해 나갈 예정이다. 닉네임 ‘반지’와 ‘코태’ 등 최소 2명 이상의 적극적인 조력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코태는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행동대장 역을 맡고, 반지는 범죄 흔적을 지우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이들 조력자가 지금까지 검거된 n번방 가담자 중에 있을 가능성과 문씨가 여러 닉네임으로 ‘1인 다역’을 했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수사 중이다. 이미 문씨의 후계자로 불리며 성착취물 대화방을 운영한 ‘와치맨’ 전씨는 기소돼 재판받고 있고, ‘켈리’ 신모(32)씨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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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