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가맹점에 복잡한 결제 과정, 이용법을 모르는 점주들까지 겹쳐 ‘관제(官製)페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제로페이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날개를 달았다. 도입 1년5개월 만에 가맹점이 50만개를 돌파하고 재난긴급생활비(이하 재난생활비) 지급·사용이 시작된 4월엔 한달 동안 1000억원이 넘게 결제됐다. 전년 동기 대비 40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로페이가 서비스 시작 1년5개월 만인 지난 8일 가맹점 50만개를 돌파했다고 11일 밝혔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언택트(비대면) 소비에 대한 관심 증대와 제로페이를 통한 지역사랑상품권(이하 상품권) 발행 확대로 제로페이 가맹점과 사용이 크게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1, 2월 제로페이 가맹점 신청은 각각 1만건이 채 안됐으나 4월에는 신청건수가 5만9000건으로 급증했다. 서울에만 집중(전체의 약 45%)됐던 가맹점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관계자들은 그간 제로페이의 완만했던 성장세가 재난생활비와 상품권 확대 발행을 계기로 가파른 성장 모멘텀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윤완수(사진) 한국간편결제진흥원 이사장은 “결제 방식이 온라인으로 옮겨갈 시점이 언젠가는 올 거였지만 그 시기가 코로나19 탓에 빨리 왔다고 생각한다”며 “이전까지는 제로페이를 보편적으로 쓰기가 어려웠지만 이제 전국에 가맹점 50만개가 깔렸으니 보편화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제로페이의 성장에는 맘카페를 비롯한 지역 커뮤니티의 힘도 컸다. 지역화폐를 산후조리원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후기가 한 맘카페에 올라온 뒤 지역화폐 사용에 불이 붙었다. 몇십만원에 달하는 학원비도 결제할 수 있다는 사실도 퍼지자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진흥원은 많은 비판을 받은 뒤 동시접속자가 1700명이었던 것에서 현재 7000~8000명 수준으로 수용 가능 인원을 대폭 늘렸다. 윤 이사장은 제로페이를 고속도로에 비유하며 “가맹점이 50만개가 됐으니 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오픈된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제 가속도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흥원은 제로페이 가맹점 300만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신용카드사와는 가맹을 맺을 수 없었던 방문판매원들도 제로페이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200만~250만개 수준인 신용카드 가맹점보다 더 많은 소상공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윤 이사장은 QR코드만 만들면 언제, 어디서든 결제할 수 있는 간편결제의 장점을 활용해 방문판매원들에게 ‘목걸이형 QR코드’를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이사장은 “최근 들어 제로페이를 사용하려는 소비자가 늘자 기존에 QR코드를 발급받았다가 잃어버렸던 가맹점들에서 재발급 요청이 하루에 100건씩은 들어오고 있다”며 “어떤 상점은 ‘단골손님이 왜 제로페이 가맹점이 아니냐고 하루가 멀다 하고 못살게 구는 탓에 제로페이에 가입한다’고도 하더라. 이제는 소비자들도 적극적으로 제로페이를 사용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가맹점이 급격히 늘고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비자도 많아졌지만 신용카드에 비해 결제 과정이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강한 건 여전히 한계로 꼽힌다. 카드를 단말기에 꼽기만 하면 되는 신용카드와 달리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QR코드를 보여주거나 가맹점의 QR코드를 스캔하고 소비자가 금액을 입력하는 등 부가적인 과정이 필요한 탓이다. 이에 대해 윤 이사장은 “간편결제 개념이 생소해서 그런 것”이라며 “신용카드가 국내에 처음 도입됐을 때도 지금과 비슷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가맹점이 더 늘어나고 소비자들도 간편결제에 익숙해지면 제로페이 사용이 본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