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총선 압승 이후 당정청의 핵심 의제인 고용보험 확대에 대해 연일 점진적 개혁을 언급하며 ‘속도 조절’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주52시간제, 검찰 개혁 등 논쟁적 사안을 속도전으로 처리하던 것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입장이다. 압도적으로 힘이 쏠린 당정청의 책임감, 열린우리당 당시 개혁 실패에 대한 반성 등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공식화하면서도 ‘사회적 합의’ ‘점진적 확대’ ‘국회의 공감과 협조’ 등의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고용보험은 국가적으로 엄청나게 큰 현안이다. 정부만 감당하면 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향후 정부도 두고두고 책임져야 하는 사안”이라며 “고용보험 확대 방향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더라도 임기 안에 성과를 내기 위해 앞뒤 없이 진도를 빼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고용보험 확대는 자영업자의 가입 동의 여부, 재정 문제 등 디테일에서도 난제가 많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자영업자는 고용보험료를 본인이 다 부담해야 한다. 1인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0.38%에 불과한 이유”라며 “재원 문제와 자영업자 소득 파악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도 MBC 라디오에 나와 “(전 국민 고용보험) 기초를 놓겠다는 것은 당장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당선인이 문 대통령을 조선시대 태종에 비유한 것과 관련해 “지난 3년이 굉장히 좀 파란만장했기 때문에 태종처럼 비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3년 동안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의 바람”이라고도 했다. 논쟁적 개혁보다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방점을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고용보험뿐 아니라 남북 관계에서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서 북한 관련 메시지는 “하나의 생명공동체가 되고 평화공동체로 나아가길 희망한다”는 한 줄뿐이었다. 문 대통령은 질의응답에서도 “국제적인 교류나 외교가 전반적으로 전부 많이 멈춰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에 우리가 계속 독촉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속도 조절’은 문 대통령 임기 초반 ‘속도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당정청은 문 대통령 임기 초반이던 2018년 2월 뜨거운 찬반 논란에도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최저임금도 16.4% 대폭 인상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패스트트랙을 통해 속도전으로 입법화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60%를 웃도는 등 국민이 여권에 힘을 몰아주고 있다. 정책의 추진 책임도 온전히 정부와 여당이 져야 하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이 각종 법안을 밀어붙이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반성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당정청이 모두 합의한 것은 ‘열린우리당 시즌2’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합의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런 ‘속도 조절’이 고용보험에 국한된 것일 뿐 국정 기조 전체에 반영된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