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뜨겁게 달궜던 ‘소주성’ 실적 초라해 이젠 낡은 구호로

입력 2020-05-12 04:02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은 문재인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 기조다. 소득 분배 불균형과 내수 부진 등 그동안 대기업과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계 소득을 높여 총수요를 늘리자는 게 핵심이다. 이런 취지에서 문재인정부 초기부터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도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정책이 급물살을 탔다. 재계나 야당에서 반발과 우려도 쏟아졌다.

그러나 임기 전반부를 뜨겁게 달궜던 소득주도성장은 최근 들어 소리 소문 없이 외면당하고 있다. 우선 실적 자체가 초라하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2047달러로 4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45만7000원으로 3년 연속 하락 중이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 출범 이후부터 감소세인 셈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0년 만에 최저치(2.0%)였다. 가계의 소득 증가가 실제 소비 확대를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소득주도성장의 기본 전제들이 모조리 어긋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 스스로 소주성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카인즈(KINDS)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임기 초반 2년(2017년 5월 10일~2019년 5월 9일)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총 1만5173건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10일부터 올해 5월 9일까지 지난 1년 동안은 5792건으로 줄었다. 정부의 홍보가 적다보니 언론의 관심도 사그라든 것이다. 실제 최근 들어 정부 공문서에서조차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꼽힌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고집스럽게 이를 밀어붙였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은 2년 연속 사상 처음 두 자릿수 인상률(2018년 16.4%, 2019년 10.9% 인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단기간의 급격한 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는 비판이 빗발쳤고, 결국 2020년 최저임금은 목표치에 미달한 8590원(2.9% 인상)에 그쳤다.

청와대는 지금도 “소득주도성장 기조는 올바른 만큼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대응책으로 내놓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전 국민 고용보험 가입 추진 등도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3년 동안 소득주도성장 정책들이 시장에 상당한 부담을 줬다”며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막대한 피해를 본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책의 궤도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