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쉬는데도 돈, 피가 마른다…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

입력 2020-05-12 00:15

우리 모두 노동과 조직생활 따위에서 해방되는 ‘은퇴’를 꿈꾸지만 퇴직 후라고 팍팍한 삶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퇴직자 상당수는 지출을 3분의 1이나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맸고, 여전히 노후를 걱정하며 한 달에 100만원 이상 저축한다. 10명 중 6~7명은 정체성 혼란과 자존감 하락 같은 후유증을 겪는다.

하나금융그룹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11일 발간한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이런 실상을 담고 있다. 센터는 지난해 11~12월 수도권과 5대 광역시에 사는 50세 이상 퇴직자 1000명을 조사했다.

퇴직 후 생활비를 줄였다는 응답자는 62.8%로 전과 비슷하다는 사람(29.9%)의 2배가 넘었다. 이들은 평소 씀씀이의 평균 28.7%를 줄였다. 지출이 늘었다는 사람은 7.3%에 불과했다. 퇴직자의 월평균 생활비는 251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한 퇴직자는 “아파트 관리비가 기본적으로 20만~40만원이 나오고 경조사비, 병원비, 보험료, 공과금 같은 것만도 월 100만원이 나간다”며 “2인 가정이라면 200만원으로는 그냥 사는 정도”라고 말했다.

노후자금이 충분하다는 퇴직자는 8.2%에 불과했다. 10명 중 6명꼴(66.0%)로 노후자금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반평생을 고생해 벌고도 노후가 불안하다는 얘기다. 주요 걱정거리(복수응답)는 병원비나 약값 같은 의료비용(71.7%), 가만 둬도 올라가는 물가(62.0%), 자녀 결혼비용(56.2%)이다. 자녀 교육(27.4%)과 부모 부양(20.0%)에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다. 결국 지출을 줄이거나 계속 돈을 버는 수밖에 없다. 저축은 퇴직자에게도 필수다. 조사에서는 54.2%가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월평균 109만5000원을 저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만원 이상 모은다는 퇴직자도 18.1%였다.

퇴직자 65.4%는 퇴직 후유증을 경험했다. 후유증을 겪는 이유(복수응답)는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압박감’(44.8%)과 ‘성취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상실감’(42.7%)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가정 내 부적응(28.0%), 자아실현 기쁨과 성취감 감소(27.4%), 조직에서 제외됐다는 소외감(25.2%), 인간관계에 대한 단절감(22.6%)도 퇴직자를 흔든다.

연구진은 “퇴직 후 1년 안에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면 3년 이상 계속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후유증 극복 후에도 2명 중 1명은 가끔 우울과 불안을 느꼈다”고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