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강조해온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은 3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미궁에 빠진 상태다.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도해 풀겠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은 2018년 초부터 남·북·미를 중심으로 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신 한반도 체제’로 발전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사태 후유증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박근혜정부 말기부터 유행했던 용어 ‘코리아 패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구상됐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이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하면서 한국 외교가 주변국에 ‘패싱’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2017년 11월 보고서에서 한반도 운전자론을 코리아 패싱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반도 운전자론은 문재인정부 초기부터 위기를 맞았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시험을 거듭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경우를 ‘레드라인’으로 규정하며 경고했다. 하지만 북한은 ICBM 탑재용 핵탄두 폭발시험과 ICBM 발사를 연이어 실시해 문재인정부를 당혹케 했다.
한반도 운전자론이 빛을 본 건 문재인정부 2년 차인 2018년부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고 우리 정부가 적극 화답하면서 남북 관계가 급물살을 탔다. 그해 3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6월에는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됐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되면서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다. 문재인정부는 북·미 대화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스웨덴 스톡홀름 북·미 실무회담에서 북한 측이 일방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교착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2년 전처럼 한반도 운전석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북·미 대화의 진전을 기다리지 않고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그 일환으로 대북 개별관광을 북측에 제안했으나 코로나19 사태 탓에 당장은 실현이 어려워졌다. 우리 측은 남북 코로나19 방역 협력도 수차례 제안했지만 여태까지 뚜렷한 대답을 받지 못했다.
국제정세 역시 불리해지는 양상이다. 한반도 핵심 당사국 모두 코로나19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외교 사안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북·미 관계를 견인해 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말 대선이 예정돼 있다. 때문에 미국은 물론 북한도 대선 전까지는 대화에 적극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