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한국교회, ‘사무엘의 시대’를 열자

입력 2020-05-12 00:03

성경 사무엘상에는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 이야기가 나온다. 엘리는 올드 패러다임을 상징한다. 사사로서 40년간 이스라엘을 지도한 그의 시대는 종언을 맞이한다. 그는 90대 말의 노인이 돼 기력이 쇠했으며 제사장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허랑방탕하고 무도한 삶을 살았다. 이스라엘은 타락 일로를 걸었다. 엘리는 눈이 어두워져 잘 볼 수도 없었다. 외면적 눈뿐 아니라 마음의 눈도 어두워지고 몸도 비대해졌다. 그러니 여호와의 말씀이 들릴 리 없다. 엘리 제사장 말기에 이스라엘은 말씀이 희귀해지고 이상이 사라진 시대가 됐다. 하나님은 엘리가 머문 실로로 상징되는 오래된 종교체제를 포기하고 새로운 교회 운동을 펼치기로 작정하셨다.

사무엘은 뉴버전, 뉴패러다임의 상징이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비통하고 마음을 쏟아붓는 기도를 통해 탄생한 인물이다. 제사장 엘리의 눈에 사무엘은 그저 평범한, 무명의 아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가 아니라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다. 몇 번을 지나친 후에 사무엘은 그 음성에 응답한다.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명의 사무엘을 쓰셨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이전되는 이스라엘의 변혁기를 잘 관리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됐다.

엘리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대패하며 법궤까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엘리의 두 아들도 전쟁에서 사망했다. 그때 비느하스의 아내는 아들을 출산하고 죽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이가봇’, 즉 ‘영광이 떠남’이었다. 하나님은 엘리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오랜 종교체제를 완전히 버린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엘리의 시대에 있는가, 사무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가.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남아 있는가, 영광이 떠났는가. 혹시 엘리 제사장 말기처럼 지금 한국교회에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희미해지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판단된다면 우리는 한국교회의 올드 버전을 버리고 과감하게 뉴 버전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올드 버전을 수선하는 정도가 돼선 안 된다.

뉴 버전 교회를 이끌 사무엘 시대의 주역들은 올드 버전 시대의 전형적 지도자들이 아니다. 세상에선 무명이지만 주님에게 인정받은 사람들, 기존의 종교체제와 상관없이 오직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주역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사무엘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 운동을 전개하실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는 한국교회에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비상한 상황으로 인해 한국교회에는 사무엘의 세대가 주역이 되는 새로운 교회 운동을 전개해 나갈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사무엘 같은 이들은 저절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무엘의 탄생은 한나의 마음을 쏟아붓는 절실한 기도로 이뤄졌다. 지금 한국교회 곳곳에 한나와 같이 생명을 걸고 기도하며 사무엘의 출산을 준비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종교가 아닌 생명의 온기를 전해줄 진짜 교회와 크리스천들, 목회자들을 갈망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갈망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종교인가, 생명인가.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신 것처럼 지금 한국교회를 부르고 계신다. “한국교회야, 한국교회야.” 이 음성에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하며 새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태형 기록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