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소재 여러 클럽을 방문,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방역당국은 지난달 30일부터 5일까지의 황금연휴 기간 동안 밀접접촉이 예상되는 노래방, 클럽 등의 방문 자제를 거듭 권고했지만, 일탈은 여지없이 발생했던 것이다. 때문에 클럽 등 유흥시설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강경한 관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쿠키뉴스는 30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유명 클럽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과 홍익대학교 일대를 탐문했다. 당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으로 유흥업소 등이 영업 시 의무적으로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이 발동되고 있던 시기였다.
강남·홍대거리는 다른 나라
“강남, 홍대, 건대는 코로나19와는 상관없는 지역 아닌가요? 코로나19에 감염돼도 클럽 출입은 어렵지 않다더군요. 입장할 때 전화번호를 받아두긴 하지만 가짜로 적어도 그만이니까요. 동선을 들키지 않으려고 현금으로 결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서울시가 클럽 영업을 막기 위해 행정명령을 내렸을 때에는 근처 술집에는 손님들이 넘쳐났었어요.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니까요.” 30일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술집과 클럽이 모여 있는 골목에 접어들자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인파로 가득했던 것이다. 모처럼 맞은 황금연휴에 이날 거리에 나온 이들은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핫스팟’으로 알려진 술집 앞에는 20대 중후반의 남녀가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술기운이 잔뜩 오른 취객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하하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오늘을 추억하자!” 시계바늘이 오후 11시를 가리키자 유명 클럽 앞은 수십 명의 젊은이들로 만원이었다. 알코올과 분위기에 취한 이들로 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길어졌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1미터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클럽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만 갖추면 됐다. 마스크 착용과 신분증만 있으면 출입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젊은이 대다수는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마스크를 벗었고, 업소 측의 출입명부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 연락처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클럽 내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5센티미터나 됐을까.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지하 클럽에서 기자를 포함해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다. 그러는 사이 클럽으로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어왔다. 클럽 내 손 세정제가 있긴 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직원밖에 없었다.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클럽 앞의 줄은 짧아지지 않았다.
손세정제 사용자는 직원 뿐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는 십여 개의 클럽이 즐비해 있는데, 클럽들이 문을 여는 시간은 오후 9시30분. 소위 ‘잘 나가는’ 클럽 앞에는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클러버의 줄이 길었다. 5개월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유행의 여파에도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 못하는 젊은이들로 클럽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클럽 문화에 생경한 기자는 근방을 서너 차례 둘러보고 나서야 이른바 ‘젊은이의 거리’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개장 준비를 마친 업소들은 오가는 젊은이들을 손짓했다. 인형 탈을 옆구리에 낀 클럽 직원이 담뱃불을 붙이다 말고 기자에게 말했다. “코로나19요? 에이 여긴 그런 것 없어요.”
“난 뉴욕에서 왔어. 홍대? 핫하잖아.” 한 손에는 맥주잔,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쥔 금발의 청년이 담뱃불을 빌리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고도 곳곳에는 술병을 손에 든 이들이 많았다. 두 평 가량의 술집에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살을 맞대고 술판을 벌였다. 그 가운데 잔뜩 흥이 오른 한 외국인이 두 손을 번쩍 들더니 “새러데이 나이트”라고 소리를 질렀다. 옆 자리의 여성이 자신의 얼굴에 튄 침을 닦으며 나무라자 이들은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술잔에 조명이 비쳐 일렁였다.
코로나19 우려는 온데간데…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2030에게 클럽과 술집은 일종의 해방구이다. 이곳에서는 짙은 화장과 피어싱, 과감한 노출도 허용된다. 클럽 음악에 몸을 맞춰 춤을 추고, 알코올의 기운에 기댄 젊은이들로 가득한 토요일 밤. 내일의 불안과 코로나19의 위협일랑 이곳에서는 따분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윽고 자정이 되자 불야성을 이룬 번화가의 음악소리는 더욱 커지고 ‘헌팅 술집’에서는 술과 이성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줄은 더욱 길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취기와 밤의 흥분은 끝날 줄 몰랐다.
정부는 국민참여 믿고있는데…
당초 방역당국은 생활 속 거리두기 체계로의 전환 이후 클럽 등 유흥업소와 다중이용시설의 방역을 시민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이었지만 이태원 클럽 사고이후 한달동안 전국 유흥시설에 운영자제를 명령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이태원 클럽에서의 집단감염에도 불구, 어느 한 사례로 행동 지침을 변경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생활 속 방역은 일상 속 국민들의 협조와 참여에 기반을 둔 방역대책”이라며 “지방자치단체장의 행정명령에 따라서는 지자체별로 예외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도 “산발적인 소규모의 집단감염 사례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한 두건만을 놓고 생활 속 거리두기의 현 방침을 변경하거나 수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태원 클럽에 확진자가 방문한) 2일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된 시기로 유흥업소 등은 영업활동 시 방역수칙을 준수토록 한 행정명령이 발동된 시기였다”면서 “역학조사에서 방역수칙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었는지 등을 지자체 등과 점검해 위반사례는 적절히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김양균·노상우 쿠키뉴스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