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치마저 자가격리… 백악관 담장 넘은 코로나 ‘비상’

입력 2020-05-11 04:02
사진=AP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처를 주도하는 보건 당국 책임자 3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주변 인사들이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백악관에도 비상이 걸렸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의 주축인 앤서니 파우치(사진)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앞으로 2주 동안 ‘완화된 자가격리(modified quarantine)’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CNN방송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파우치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확인되지 않은 코로나19 관련 주장을 반박하면서 미국인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도 백악관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인사와 접촉해 2주간 재택근무를 한다고 CDC가 이날 발표했다. 스티븐 한 식품의약국(FDA) 국장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미 정부의 방역 컨트롤타워가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뚫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 책임자들의 자가격리는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 케이티 밀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여파다. 뉴욕타임스(NYT)는 밀러 대변인이 보건 당국자들이 참여하는 코로나19 TF 회의에 자주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밀러 대변인이 백악관 내에서 슈퍼 전파자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가격리에 들어간 한 국장이 접촉한 코로나19 확진자는 밀러 대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우치 소장과 레드필드 국장이 접촉한 백악관 인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밀러 대변인이거나 밀러 대변인과 가까이 있었던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파우치 소장은 CNN 인터뷰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백악관 직원과 ‘낮은 위험(low risk)’의 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확진자와 매우 가까이 있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그는 주로 집에 머물면서 마스크를 쓴 채 통신 수단을 이용해 코로나19 대응 임무를 계속할 예정이다. 지난 8일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파우치 소장은 앞으로 매일 진단검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파우치 소장과 한 국장, 레드필드 국장은 오는 12일 상원에서 열리는 코로나19 대응 청문회에 참석하는 것도 불투명해졌다. 파우치 소장은 백악관이나 의회에서 부를 경우 코로나19 전파를 막을 수 있는 모든 채비를 다 갖추고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3명 외에도 데비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 등 핵심 당국자들이 추가로 자가격리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슈퍼 전파자 의심을 받는 밀러 대변인은 백악관 사내 커플이다. 그의 남편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정책 설계자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보좌관이다.

NYT는 밀러 선임보좌관이 최근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도 코로나19에 노출됐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서 지난 7일에는 백악관 경내에서 근무하는 군인 한 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보좌관의 개인비서도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워싱턴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전승 75주년 헌화식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참석해 또다시 논란을 자초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