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자존심 싸움에… 안보리 코로나 결의안 무산

입력 2020-05-11 04:06

코로나19 대응 공조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이 미국과 중국의 자존심 싸움 속에 끝내 무산됐다. 결의안에 세계보건기구(WHO)를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벌어진 일이다.

9일(현지시간) CNN방송 등에 따르면 미 정부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주력하기 위해 모든 분쟁을 중단하고 휴전에 돌입하자는 내용의 안보리 결의안 통과를 막았다. 미국은 WHO의 중국 편향성을 문제 삼아 결의안에 어떤 식으로든 WHO가 언급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CNN에 “미국은 WHO 대신 ‘보건 분야에 특화된 유엔 산하 기구’라는 용어를 쓰는 것조차 반대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은 WHO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뭉쳐야 한다는 표현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맞섰다. 미·중의 이 같은 입장차 때문에 6주 넘게 이어져온 국제사회의 결의안 채택 논의는 소득 없이 끝났다.

안보리의 한 외교관은 “결의안 논의가 본질과는 상관없는 부수적인 문제의 인질로 잡히면서 미·중 다툼으로 변질됐다.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CNN은 코로나19에 따른 국제적 위기에도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중국과 각을 세우는 데만 열중하면서 동맹국들도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다수 국가들이 코로나19 대응만으로도 벅찬데 미·중 양국의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프랑스 출신 외교관은 “우리는 중국에 등을 돌릴 수 없다. 중국은 중요한 국제 파트너이고 어떤 나라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며 미·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미국의 행보를 비판했다. 독일 출신 외교관도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의 일환이라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중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 언론인에 대한 비자를 기존 무기한에서 90일짜리로 제한하기로 했다. 미 국토안보부(DHS)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중국 언론인의 숫자를 전반적으로 줄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2월 중국의 5개 관영 매체를 정부 통제를 받는 외교사절단으로 지정했고, 중국은 한 달 뒤 자국에 주재하는 미국 주요 매체 기자들의 기자증을 회수하고 사실상 추방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0일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정면 반박하는 ‘미국의 거짓말과 진상’ 기사를 2개면에 걸쳐 실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