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힘썼던 이규상(81) 목사가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섰다. 건강이 여의치 않아 휠체어에 의지한 채였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이규상 목사 전기 출판기념회’에서 이 목사는 단 두 마디로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울림이 있었다. 애초 감사의 말은 이 목사 건강상 고순희 사모가 대신 하기로 돼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이 목사의 음성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이사장 권호경 목사) 주최로 열렸다.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은 기독교민주화운동사 정리의 일환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의 전기를 펴내고 있다. 이 목사가 7번째 주자다.
이 목사 전기를 출판한 대한기독교서회 서진한 사장은 “70년대 한국 기독교인들이 민주화운동에 있어 굉장히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알려진 건 유명한 몇 분, 몇 사건일 뿐”이라며 “드러난 사람들, 사건 외에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 목사님의 책도 그 기억의 퍼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평생을 낮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목사가 되기 위해 한국신학대학교(현 한신대) 신학과에 들어갔던 이 목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천 대성목재 부두 노동자가 됐다. 신학교 졸업 후 그가 택한 노동자의 길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인천산업선교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고, 노동자와 함께 살아온 경험은 빈민조직선교로 이어졌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평화통일운동에도 참여했다. 2013년에는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민주지사’로 선정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풋프린팅을 남겼다.
이 목사의 평생지기로 그를 지근거리에서 봐 온 권호경 목사는 이 목사를 “매사 진실했던 사람”이라 표현했다. 권 목사는 “박정희정권의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용공조작사건 당시 감옥에 끌려가서도 이 목사님은 수사관들 앞에서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불리를 떠나 정정당당하게 기관원들과 맞섰다”고 말했다.
이날 축사를 전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육순종 총회장은 “털면 털어지는 옷감이 있듯 스며드는 옷감도 있다. 이 목사님은 스며드는 옷감 같은 사람”이라며 “이웃과 시대의 고통이 목사님께 스며들었고 평생을 품고 사셨다. 몸소 보여주신 목회의 본질을 늘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