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전위적 미술인 앵포르멜(끈적끈적한 추상)을 했다. 1970년 일본 무라마츠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선 빨래를 비틀어 짠 듯한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그렇게 20∼30대 시절 현대미술의 최첨단에 섰던 그였다. 하지만 이혼하고 설악산에 혼자 칩거하던 1980년대에 그는 자신의 몸속에 구상화가의 피가 흐른다는 걸 알았다.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꽃들을 보면서였다. 그는 그렇게 ‘꽃그림 작가’가 됐다.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원로 김종학(83) 작가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설악의 화가’로 알려진 그가 청년 시절 전위예술에 탐닉했음을 입증하는 초기 작품들이 처음으로 대거 나오는 등 화업 60년의 궤적을 보여준다.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 나온 화가의 표정은 흥분돼 보였다.
체질상 추상이 맞지 않았던 그는 70년대 초 팝아트 등 구상회화가 꽃피던 뉴욕으로 건너가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했다. 화가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1980년대 이후의 설악산 시대를 조명한 코너다. 1979년 설악산의 한 외양간을 고쳐 아틀리에를 만들었다는 그는 “그렇게 떨어져 사니 화단 눈치를 안 보고 마음껏 그릴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호박꽃, 민들레, 원추리, 생강꽃, 할미꽃, 산수유…. 그렇게 화폭 속에 형형색색 들어온 꽃은 그의 브랜드가 됐다. 생명이 주는 기쁨을 전하고 싶어 팔레트에 색을 섞지 않고 생색을 그대로 발랐다. 그렇게 표현된 꽃 그림에서는 기운생동의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데 작가는 꽃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방식과 감각으로 재배치한다. 그걸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작업은 추상부터 시작해서 구상으로 왔지만, 추상에 기초를 둔 새로운 구상이다.”
‘서울대 미대 출신이 꽃 그림이나 그린다’는 빈정거림이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1년에 한 번꼴로 전시를 했다. 작가는 “그렇게 10년을 하니 유명해져 있더라”라고 회고했다. 6월 21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의 해운대구 조현화랑에서 열리는 이배(64) 개인전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김종학 개인전이 원색의 향연이었다면 이배 개인전은 먹빛의 심연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이배 작가는 ‘숯의 화가’다. 소나무를 태워서 나온 숯을 재료로 평면과 입체 작업을 동시에 한다. 캔버스 위에 숯을 차곡차곡 깔아놓고 평평하게 사포질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숯을 장작더미처럼 쌓아놓은 설치 작품도 내놓았다.
그는 어쩌다 숯의 화가가 됐을까. 1972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뒤 그는 원색의 추상 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현대미술의 심장부에서 활동하기 위해 89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것이 계기가 됐다. 글로벌 작가들이 모여드는 파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고, 그러려면 눈에 띄어야 했다. 어느 날 바비큐용 숯을 본 그는 무릎을 쳤다. 이후 숯을 가지고 목탄처럼 드로잉을 하기도 하고 오브제처럼 캔버스에 붙이기도 했다. 가난한 화가들의 아틀리에가 밀집한 옛 담배공장에서 작업했는데, 그곳을 취재하러 온 리베라시옹 기자의 눈에 띄었다. 그의 주선으로 개인전이 열리며 시쳇말로 떴다.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그때 숯이라는 재료와 수묵의 동양 문화를 연결 지어 설명했는데, 그게 프랑스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신작으로 회화 작업을 내놨다. 사포로 갈아내는 과정에서 나온 숯가루를 버리지 않고 그걸 아교로 개서 먹물처럼 사용해 일필휘지 붓질을 한 것이다. 숯으로 평면 작업을 한 작품에서도 사포질을 생략함으로써 숯 자체의 자연스러움을 더 살렸다. 숯 위에 파스텔로 쓱쓱 필선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신작에선 서예의 붓질이 느껴진다. 그는 “지난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에서 개최한 한국 서예전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제 작품도 일종의 서예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묵의 본질은 서예의 획이다. 그의 작품에서 마침내 필획이 등장한 것이다. 1992년 숯으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28년 만이다. 5월 31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