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는 1985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흥행 이후 원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카하타 이사오, 도시오 스즈키 등과 함께 설립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지브리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자연과 대립하는 인간의 이기심은 모두의 생존을 위협했지만, 결국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다.
지브리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미야자키의 손을 거쳤고, 미야자키는 공존을 추구했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귀를 기울이면’ ‘마루 밑 아리에티’….
지브리의 특징인 수작업도 미야자키의 고집이다. 컴퓨터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던 90년대에도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했다. 지브리 특유의 소박한 감성은 손으로 만들었을 때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미야자키는 2013년 ‘추억의 마니’를 마지막으로 이듬해인 2014년 은퇴했다. 지브리는 그 해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작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브리 소속 감독들은 ‘제2의 하야오’ 수식어를 달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사실상 해체된 상태인 지브리는 오랫동안 스트리밍서비스 상영권 제공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고질적인 경영 악화로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판권은 정확한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약 2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지브리의 명작은 지난 2월부터 넷플릭스로 들어왔다. 석 달간 7편씩 계약된 21편 모두 업데이트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고립이 일상화 된 상황에서 특유의 지브리풍 색채가 짙고, 공존 메시지를 담은 작품 세 편을 선정했다. ‘벼랑 위의 포뇨’ ‘코쿠리코 언덕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 모두 어린 소녀가 희망의 메신저가 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소통한다.
2008년 개봉한 ‘벼랑 위의 포뇨’는 호기심 많은 사랑스런 물고기 소녀 포뇨의 이야기다. 바다 생활에 싫증을 느낀 포뇨는 해파리를 타고 가출을 감행한다. 여러 위험을 마주한 포뇨의 앞에 해변가에 놀러 나온 소년 소스케가 서있다. 순수하고 용감하다. 포뇨는 그와 함께 웃고 울었다. 엄마를 찾기 위해 손을 맞잡았고, 토닥이고 보듬으며 서로의 안식처가 돼줬다. 특히 ‘엄마’와 ‘바다’의 의미가 남다르다. 포뇨가 사는 바다는 모성을 상징한다. 포뇨가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포뇨의 엄마도 자애로우면서 대범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오염 문제도 꼬집었다. 쓰나미가 오자 온갖 쓰레기가 마을에 떠밀려 오는 장면에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도 든다.
2011년 개봉한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첫사랑의 설렘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16세 소녀 우미는 슌을 만나면서 두근거림을 알았다. 이야기는 우미의 고등학교에서 시작한다. 낡은 것을 갈아엎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자는 움직임 속에서 학교에도 철거 운동이 일었다. 우미와 슌은 추억이 깃든 장소를 그대로 잃어버릴 수 없었다. 함께 보존 운동을 시작했고, 그 안에서 사랑을 마주했다. 고등학생들이 처음 느껴보는 애뜻함을 감성적 음악으로 표현했고 발걸음 소리, 자전거 페달 소리 하나도 섬세하게 잡아냈다.
2010년 개봉한 ‘마루 밑 아리에티’는 10㎝ 소녀 아리에티가 마루 위 인간 세상으로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래된 저택 마루 밑에 사는 아리에티는 14세가 된 해에 빨래집게로 머리를 질끈 묶고 혼자서 마루 위로 깡총 뛰어올랐다. 하지만 곧장 인간과 마주쳤다. 바로 쇼우다. 인간을 두려운 존재로 여겼던 아리에티는 쇼우는 다정한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쇼우와 아리에티는 친구가 됐다. 인간과 자연, 당신과 나의 공존의 이야기를 소소하면서 무겁게 던졌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