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가까운 친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자랐다. 그래서 벙어리냐는 소리를 늘 들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지만 나중에는 ‘말을 하면 내가 지는 것’이라는 이상한 고집까지 생겨 누가 질문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엄마, 찬양이 밥 먹었대’ ‘엄마, 찬양이 6단지에 산대’ ‘엄마, 찬양이 허락받고 왔대’ 하며 친구가 통역을 했다. 자연히 학교생활도 너무 힘들었다. 대답을 하지 않아 벌을 받고 반성문을 쓰고 인사를 하지 않아 심하게 꾸중도 들었다. 혼나고 벌 받는 것보다 입을 벌리는 것이 더 싫고 창피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화가 나서 방문을 닫아 걸면 부모님이 맛있는 음식과 장문의 편지로 설득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교회에서도 나는 입을 굳게 닫고 지냈다.
중학교 때 다른 아이들은 교회에서 다 함께 예배드리는데 나는 영상팀에서 혼자 기계처럼 일하다 집에 왔다. 내 신앙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에 가면서 결국 교회를 떠났다. 이런 학창시절을 거쳐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가장 큰 장애물과 맞닥뜨렸다. 중국어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것이다. 방학 중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학교에서 중국어 강의를 들었는데 중국어 선생님이 매일 ‘크게 읽어보라, 입으로 따라하라, 크게 대답하라’고 하시니 너무 괴로웠다. 중국어를 포기하기에는 복수전공 신청기간도 지났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종강 후 용기를 내서 선생님 사무실에 찾아가 지금까지의 사정을 모두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정말 어이없게도 한마음교회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잊혀진지 오래인 교회에 가라니?’ 그런데 교회에 가면 무언가 답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마음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거기서 내 인생 최대의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었다’는 말씀과 ‘죽음 앞에서 도망쳤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목숨 걸고 예수님을 증거했다’는 말씀이 임한 것이다. 방언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 곧 예수님의 부활이 흔들림 없는 믿음의 근거였다. 그와 함께 로마서 14장의 예수님께서 부활의 표적을 주신 이유가 바로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니 내가 왜 교회를 떠났는지, 왜 말을 하는 것이 힘들고 싫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성격, 내 입, 내 마음의 주인인 나! 그 ‘나’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이다. 내가 싫으면 입을 닫는 그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것이다.
힘들었지만 중국어를 하게 해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다. 의사 표현이 완전하지 못함에도 주위의 중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찾아다니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입을 연 내게 놀라기 시작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생각도 접고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다. 지금은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중국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만나는 학생마다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언어의 장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입을 열어 전하면 성령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하고 다양한 국적의 영혼들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하다. 앞으로도 주님께 받은 사명을 위해 달려갈 것이다.
김찬양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