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향한 국내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해외에 비해 뒤처진 감은 있지만 조금씩 속도가 붙고 있다.
백신 개발과 접종은 향후 우려되는 코로나19 재유행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한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30여 개국이 백신 개발에 10조원의 기금을 조성키로 하는 등 전 세계가 공동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백신·치료제 개발 지원단을 별도로 꾸려 제약기업 등의 애로사항 해결에 나서고 있다.
7일 세계보건기구(WHO) 보고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100건 넘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람 대상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한 사례는 10여건 수준이다. 세계 최대 임상시험 등록기관인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클리니컬트라이얼스(ClinicalTrials.gov) 데이터를 보면 지난달 27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관련 진행 중인 글로벌 임상시험은 14건이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 10건으로 가장 많고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 3건, 기타(NIH 및 미 연방정부 후원 등) 1건이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5건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과 이집트 각 2건,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콜롬비아 각 1건이다. 임상시험 단계별로는 소규모 인원 대상 임상1·2상(독성 및 적정 용량·용법 확인)이 대부분이지만 수백~수천명 대상의 임상3상(시판 전 안전성·유효성 최종 확인)도 5건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선 10곳 안팎의 제약 바이오기업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백신 후보 발굴에 나섰지만 아직 동물실험 등 임상 전(前) 단계에 그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임상시험 승인은 물론 임상시험 신청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국내에서 진척이 가장 빠른 제넥신의 자체 개발 코로나19 예방용 ‘DNA백신’(GX-19)은 최근 영장류 실험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제넥신 측은 GX-19를 원숭이에게 투여한 결과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 항체 생성 및 면역반응 유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DNA백신은 바이러스 항원을 만들어내는 유전자(DNA)를 인체에 직접 투여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항원)을 만들어내도록 재조합한 DNA를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제넥신은 국제백신연구소(IVI), 제넨바이오, 카이스트, 포스텍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코로나19 예방용 DNA백신을 개발 중이다. 컨소시엄은 이달 안에 식약처에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식약처의 신속한 승인이 이루어진다면 6월에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코로나19 예방 DNA백신이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으로 제넥신 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은 미국에서 지난달부터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이노비오의 DNA백신(INO-4800)에 대한 국내 임상시험(1·2상)을 이르면 6월에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40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노비오는 재미 과학자 조셉 킴이 이끌고 있는 바이오기업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노비오의 DNA백신 국내 임상시험 신청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신청되면 우선 신속심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른 방식의 백신 개발도 힘을 받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고려대 약대 송대섭 교수팀과 함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조합 단백질 백신’(서브 유닛 방식: 바이러스 일부를 포함한 항원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투입해 면역반응 유도) 후보 물질을 개발해 휴벳바이오에 기술이전했다. 해당 후보물질은 설치류 등 동물실험에서 중화 항체가 형성됨이 확인됐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도 코로나19 서브 유닛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해 동물 효력실험을 진행 중이며 이르면 9월 중 임상시험에 돌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백신의 경우 효과적인 후보 물질이 개발되더라도 단계별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돼야 하는 만큼 실제 일반인 대상으로 보편 접종이 가능한 제품으로 상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백신은 치료제와 달리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투여돼 임상시험 과정에 안전성 확보가 최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과거 백신 개발 과정에서 부작용 발생 사고가 몇 차례 있었다.
해외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시급성을 감안해 초기 임상단계에서 효능이 입증될 경우 생산도 함께 진행해서 의료진 등 감염 노출 고위험군부터 먼저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개발기간을 단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은 백신 개발기간을 당초 예상했던 12~18개월보다 훨씬 앞당겨 내년 1월쯤 수억개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섣부른 전망까지 내놨다.
하지만 박혜숙 이화여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최근 열린 온라인 포럼에서 “(시급성을 이유로) 백신 개발이 과학적 설계와 평가 없이 이뤄지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 실용화하는 데 일정 시간이 걸린다는 걸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