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과대 4학년인 박모(23)씨는 지난 1일 전공과목 수업에서 황당한 시험을 치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시험이 진행됐는데 문제 출제 순서가 학생마다 모두 달랐던 것이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박씨는 첫 문제가 고난도여서 시간 분배에 어려움을 겪었다. 쉬운 문제부터 풀고 싶었지만 다음 문제로 넘어가면 ‘0점’ 처리되는 구조였다. 박씨는 “어려운 문제부터 접한 학생들은 처음부터 복잡한 계산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고 말했다. 쉬운 문제부터 푼 학생들보다 불리했다는 얘기다.
온라인 시험을 치른 대학가 곳곳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부정행위를 방지하려다 되레 평가 기준에 흠결이 생긴 것이다. 학생들은 온라인 시험이 복불복 시험으로 변질됐다고 토로한다.
서울대 ‘코로나 학번’ 김모(20)씨는 입학 후 치른 첫 시험부터 시간 압박에 시달렸다. 답안지를 보고 베껴도 필기 속도가 느리면 답안을 완성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부족했다. 김씨는 “수강생들이 논의하면서 문제를 풀까 우려해 시험 시간을 대폭 줄인 것”이라며 “이해력이 아니라 순발력을 평가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해당 시험은 온라인으로 문제가 제시되면 학생들이 답안을 수기로 적은 뒤 촬영해 정해진 시간 내에 온라인 강의실에 업로드하도록 했다. 김씨는 “얼굴도 본 적 없는 학우들이 답안지를 늦게 올려서 결석·지각 처리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한시적으로 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미국의 120여개 대학들은 지난달부터 등급제를 합·불합격 평가제로 바꿨다. 향후 취업에 불이익이 갈 것을 우려해서다. 서울대 공과대 2학년 유모(21)씨는 “어떤 강의는 비대면 강의를 해놓고 시험은 대면으로 하는 등 기준이 뒤죽박죽”이라며 “이럴 거면 굳이 시험을 진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측은 부정행위 방지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해당 수업 교수는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시험 방식에 대해 학생들에게 미리 의견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