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질병관리본부(질본) 본부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와 애정은 각별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악화일로였던 지난 2월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정 본부장이) 좀 허탈하지 않을까, 보통 이런 상황이면 맥이 빠지는데, 체력은 어떤지… 어쨌든 계속 힘냈으면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말로 전한 위로로 부족했는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3월 11일엔 충북 청주 질본을 깜짝 방문해 방역 인력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정 본부장을 만나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야당 대표로서 질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정 본부장님이…(질병예방센터장이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정 센터장을 눈여겨 봤다가 정권 교체 후 직접 질본 본부장으로 발탁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화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특정 공직자를 콕 찍어 신뢰를 드러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차관급 공무원인 정 본부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 본부장은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서 거의 매일 방역 상황을 정확하게 브리핑했다. 기대 섞인 낙관론 대신 냉철하게 상황을 설명해 국민 신뢰를 얻었다. 전문성에 대한 자기 확신도 뚜렷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마스크 대란 당시, ‘면 마스크도 괜찮다’ ‘면 마스크라도 활용하자’는 내용의 브리핑을 정 본부장에게 요청했는데 단호히 거절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 본부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웅이 아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에서 급하게 ‘모셔온’ 전문가도 아니다. 그는 그저 소명의식을 갖고 묵묵히 질본에서 자신의 일상 업무를 해온 공무원이었다.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갈고닦은 역량을 한국과 전 세계에 증명했다. ‘스타 공무원’의 탄생이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방역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후폭풍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직격탄을 맞은 경제뿐 아니라 사회, 문화 모든 것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사명감 있고 역량 있는 공무원들이 더욱 필요하다. 영역마다 준비된 공직자들, 더 많은 정은경들이 필요하다.
청와대는 최근 개각설이 나오자 “개각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참모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한번 기용한 참모라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함께 품고 가는 스타일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이다. 여당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 갈등으로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질타할 때도, 문 대통령은 “경제 사령탑은 부총리”라며 힘을 실어줬다. 공직사회가 동요 없이 코로나19 대응에만 전념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참여정부에 하산(下山)은 없다.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 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다.” 2007년 노무현정부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던 시절,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의 취임사였다. 문재인정부에도 하산은 없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전력 질주하고 자신을 소진한 뒤 고향인 양산으로 내려가겠다는 게 대통령 생각인 것 같다.” 한 참모의 전언이다.
10일이면 문 대통령의 임기는 꼬박 만 3년을 채운다. 남은 2년, 코로나19로 해야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점점 부족해진다. 문 대통령이 직접 밝힌 한국형 뉴딜부터 일자리 지키기, 비대면 산업 발굴 등 정부의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통령과 함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전력 질주할 더 많은 정은경들이 정부에서 나와야 한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