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간질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지방간과 알코올 간염에 의한 간경변증과 간암이 늘고, 바이러스성 간염에 의한 간경변증과 간암은 줄고 있다.
이런 지형변화는 무엇보다 B형 간염 예방접종의 보편화로 만성 B형 간염 환자수가 눈에 띄게 감소해서다. 대신 알코올 간염과 지방간, 이에 따른 간암 환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간질환은 또한 근거가 분명치 않은 속설이 유독 많은 병이기도 하다. ‘2세에게 유전이 된다’ ‘술잔만 돌려도 간염에 걸린다’ ‘지방간은 나잇살과 같은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간 기능이 떨어져 소화가 잘 안 되는 것도 서러운데, 이 같이 근거가 불분명한 속설은 간질환 환자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
간질환에 대한 속설들을 어디까지 믿고 따라야 할 것인지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장재영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봤다. 장 교수는 1993년 순천향의대를 졸업하고 2004년 일본동경대학교 간암센터, 2008~2010년미국 하버드의대 부속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을 잇따라 방문해 고주파열치료법과 C형간염에 대한 기초연구 등 최신 간질환에 관한 연구를 집중 수련했다. 현재 대한간암학회 학술이사, 대한간학회 의료정책이사. 한국인 간질환 백서 개정위원장, 간경변증 진료가이드라인 개정위원장, 원발성간암규약집 개정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Q. 간염의 전파 경로는?
A. 간염은 말 그대로 간에 염증이 생겨 간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다. 크게 바이러스성 간염과 알코올 간염, 약제성 간염 등으로 분류되고, 바이러스성 간염은 다시 A·B·C·D·E·F형 6종류로 나뉜다. 이중 A·B·C형 3가지가 가장 흔하지만, 감염 경로와 질병의 경과는 제 각각 다르다.
A형 간염은 주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물 섭취로 전염되며 만성 간질환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대부분 합병증 없이 회복되지만 일부 고령 환자에서는 전격성 간염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는 게 특징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한국인 급·만성 간질환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주로 모자간(母子間) 수직 감염 형태로 전파된다. 비위생적인 주사바늘, 침, 면도기 등을 같이 사용하다 전염될 수도 있다.
간혹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가 다른 사람에게 간염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것은 아닐까 오해를 받지만,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는 바이러스가 몸 안에 있긴 해도 활동하지 않아 염증반응도 없는 상태다. 따라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식사와 같은 일상생활에서는 전염력이 거의 없다.
C형 간염 바이러스 역시 B형 간염과 마찬가지로 비위생적인 주사바늘, 면도기 등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그러나 C형 간염 환자의 경우 정확한 전파 경로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30%나 된다.
B형 간염 보균자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유전 여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간염은 유전병이 아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유전이 아니라 ‘감염’으로 발생한다. 보균자인 어머니가 출산할 때 수직 감염으로 아이에게 전파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Q. 지방간은 애주가 질환이다?
A. 지방간이란 간 속에 지방질이 과도하게 쌓여 전체 간 무게의 5%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를 말한다. 알코올과 비알코올 지방간으로 나뉜다. 비알코올 지방간은 술과 관련이 없는 운동부족 및 식이성 지방간을 가리킨다.
흔히 지방간은 음주를 과도하게 즐기는 사람에게 발생한다고 알고들 있지만 이 역시 그른 상식이다. 전체 지방간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은 비알코올 지방간 환자란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비알코올 지방간은 당뇨병, 대사증후군, 고지혈증, 복부비만, 약물 복용 등이 주원인이다. 따라서 비만, 당뇨, 고지혈증을 가진 사람이 간 기능 검사 이상 소견을 보이면, 지방간도 덩달아 의심해야 한다.
과음과 비만 못지않게 탄수화물과 당분의 과잉 섭취도 지방간 발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지적된다. 한국인은 특히 흰 쌀밥 위주의 식습관으로 인해 탄수화물 섭취가 높아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비알코올 지방간 진단을 받은 환자의 경우 하루 에너지 필요량 중 50~60%만 탄수화물 식이로 섭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인도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를 자제하고 설탕, 시럽, 과즙 농축액 등의 과당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다.
알코올 지방간의 10~35%는 알코올 간염을 유발하고, 비알코올 지방간의 10%는 염증이나 섬유화 현상을 수반한 지방간염으로 발전한다. 그 결과 간경변·간암 발생 위험성이 높아진다.
Q. 간 기능의 바로미터, 간수치가 뜻하는 것은?
A. 간수치는 간 기능 저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혈액검사 수치를 말한다. 간 기능을 나타내는 혈액검사 수치로는 AST, ALT, γ-GT, ALP, 빌리루빈, 알부민, 프로틴, PT(prothrombin time) 등이 있다.
대개는 이 중 2가지 효소, AST와 ALT의 양으로 가름한다. ALT 효소는 주로 간에 많고 AST 효소는 간 이외 심장, 신장, 뇌, 근육 등에도 들어있다. 또 γ-GT 효소는 담관(쓸개관)에 존재하는 효소로 간장애와 담도질환과 같은 담즙배설장애가 있을 때 증가한다.
일단 간염 등 간질환에 의해 간세포가 파괴되면 AST, ALT 등이 핏속을 돌아다니게 된다. 간염에 걸리면 혈중 AST, ALT 수치가 높게 나오는 이유다. 급성간염, 만성간염, 알코올 간염, 지방간염, 약인성 간손상, 간경변증, 간암, 전격성 간염, 심근경색 등이 발생했을 때 간수치가 높게 나온다.
AST, ALT 수치의 정상범위(참고치)는 40IU/ℓ이하다. 이보다 수치가 높을 때는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음주를 삼가며 영양에 신경을 쓰는 등 간의 일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Q. 하루 커피 한 잔이 간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데?
A. 사실이다. 아직 정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지만, 커피를 먹으면 간 건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한 예로 대한간학회 자료를 보면 일본 도호쿠(東北)대 연구팀은 40세 이상 6만1000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커피를 마시는 횟수와 간암 발생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이 연구 결과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의 간암 발생률을 1로 했을 때 1일 0∼1잔을 마시는 사람의 간암발생률은 0.71로 나타났다. 매일 커피를 1잔 이상 마신 경우 간암 발생률은 더 낮아 0.58이었다. 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커피는 믹스보다는 원두가 낫고, 탄산음료나 술과 함께 마시면 칼슘 흡수를 방해해 골다공증을 촉진할 수 있다. 또 불면증 환자가 커피를 마시면 수면장애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기수 쿠키뉴스 대기자 elgis@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