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중국 현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연일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연합(EU)도 중국 조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EU가 오는 18일 세계보건기구(WHO) 화상 총회에서 코로나19의 기원과 확산에 대한 독립된 국제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5일 보도했다.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지난 3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어떤 경로로 이렇게 심각해졌는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결의안에서 요구하는 조사는 팬데믹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어떻게 조율돼야 하는지 규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렐 국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중국 책임론도 거론했다. 그는 “EU는 이제껏 중국을 대할 때 너무 순진했다”며 “중국은 국제질서에 따라 여러 국가를 다르게 대해 왔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국제법 또한 입맛에 맞지 않으면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통적으로 지정학적 싸움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EU는 독일 국방장관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적극적으로 세계정세에 개입하는 모양새다. SCMP는 EU의 이러한 움직임을 ‘전략적 자치권’ 행사를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이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묘책이라는 것이다.
CNN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미 정부 인사들이 중국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은폐하려 한다는 점을 공동으로 규탄하는 방안에 대해 몇몇 동맹국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EU의 중국 조사 촉구 결의안 준비가 이 같은 미 정부의 움직임과 연관된 것인지 주목된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여러 동맹국에 중국을 언급했다”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 동맹국이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일부 유럽 지도자들은 중국이 어떻게 코로나19 위기에 대처했는지를 궁금해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 3월부터 코로나19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는 주장을 지속해 왔다. 최근엔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등이 나서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 실험실에서 유출됐다”는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중국이 조사를 허용할 때까지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우리를 자국 연구소에 들여보내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해주기 전에는 중국을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반박에 나섰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기원을 밝히는 것은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들에게 맡길 일”이라면서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중국을 공격하는 건 올해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진영의 전략”이라면서 “관세를 무기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중국 책임을 묻기 위해 중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