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디지털성범죄’ ‘그루밍’ 초등생 교과서에 실린다

입력 2020-05-07 04:07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지난달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 엄중 처벌 및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관련 교육 내용이 추가된 초등학교 보건 교과서가 처음 도입된다. ‘n번방 사건’ 가해자 상당수가 10대인 상황에서 청소년의 성인식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학교 성교육 현장의 변화가 기대된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단법인 보건교육포럼이 수정한 초등학교 5, 6학년 ‘생활 속의 보건’ 교과서에 대한 승인을 7일 경기도교육청에 신청할 계획이며, 도교육청은 이에 대한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새 교과서가 승인되면 내년부터 경기도뿐만 아니라 전국 교육 현장에서 수정된 교과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6일 “심사에는 2~3개월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교과서 수정본의 성교육 관련 단원에는 그루밍과 사이버(디지털) 성폭력 관련 내용이 대폭 추가됐다. 6학년 보건 교과서 ‘성폭력 함께 예방하기’ 단원에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내용이 추가됐는데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인 괴롭힘과 불법 촬영물 유포·협박, 불법 촬영, 불법 촬영물 공유 등이 디지털 성폭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피해 예방뿐 아니라 가해 행위가 처벌 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n번방’과 ‘박사방’ 등에서 미성년자 성착취 방식으로 논란이 된 ‘그루밍’도 상세히 다뤘다. 수정본에서는 “(그루밍은) 온라인 대화를 이용해 친절을 베풀며 호감과 신뢰를 쌓은 뒤 성적인 대화를 하거나 신체 사진 영상을 요구해 성폭력을 하기 위한 협박의 도구로 활용하는 행동 전체를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타인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전달해서도 안 되고, 촬영된 사람의 허가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게시하거나 유포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불법 촬영에 대해서는 “촬영 자체만으로 범죄가 될 수 있다”며 “불법 촬영물은 저장하거나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클릭조차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보건교육포럼 관계자는 “그간 청소년 대상 성교육은 성범죄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내용 위주로 교육했다”며 “가해자 방지 교육은 부족하다는 점이 계속 지적돼 왔다”고 말했다. 수정본 저술에 참여한 우옥영 경기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보건 교과서가 종전 교육과정(2009년) 때 출간된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탓에 보건 교육의 한 부분인 성교육 내용도 오랫동안 뒤떨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시·도교육청에서는 초등학교 보건 교과서를 수정하려는 구체적 움직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은 정식 교과가 아니어서 교과서를 현행 교육과정에 맞게 수정할 의무는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정도서 승인은 각 시·도교육청에 권한이 있다”면서도 “시·도교육청 한 곳에서 인정도서로 승인되면 다른 시·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