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천 화재참사 조문 태도 논란 하루 만에 고개를 숙였다. 이 전 총리는 “저의 수양 부족이다.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위로의 정석’을 보여준 이 전 총리가 이천 화재참사 유족들에게는 유독 까칠한 태도로 대응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은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정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총리는 6일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유족의 슬픔과 분노를 아프도록 이해한다”며 “그런 유족 마음에 저의 아픈 생각이 다다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향후 대응 방안이 담긴 측근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천에 다시 가는 것은 야당 공세에 밀리는 모양’ ‘유족 문제를 전력을 다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라’ 등의 내용이었다.
국무총리 시절 이 전 총리의 위로는 좋은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11월 독도 헬기 추락사고 실종자 가족 면담이 대표적 일화다. 이때 이 전 총리는 오열하는 유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1시간 동안 면담했다. 측근인 양재원 보좌관이 집필한 ‘이낙연은 넥타이를 전날 밤에 고른다’에는 119심리지원상담사가 이 전 총리 대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NY의 말투, 억양, 현장 분위기에 맞는 행동 등이 가족에게 신뢰감을 줬다. NY 방문 이후 가족들의 심리 상태가 매우 안정됐다”고 했다. 강원도 고성 산불 사태 때도 현장을 네 차례 방문해 이재민들의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했다.
이랬던 이 전 총리의 이천 화재참사 논란은 특유의 조심성이 지나쳐 벌어진 일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초 이 전 총리는 개인 자격으로 조용히 조문을 다녀올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행팀이 유족에게 이 전 총리 조문 계획을 알렸고, 유족은 공식 방문으로 이해하고 이 전 총리를 기다렸다.
빈소에 도착할 때까지 이 전 총리는 상황을 모르고 있다가 유족과 취재진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해결책을 요구했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버텼다. 이후 이 전 총리는 수행팀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북 안동 산불 현장에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조속한 지원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가 비판받았던 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영남권 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과 전직 총리이자 신분으로 선을 넘은 행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를 잘 아는 민주당 의원들은 유족의 기대와 이 전 총리의 기대가 어긋나 생긴 일이라고 봤다. 한 의원은 “이 전 총리 성품상 현재 처지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자 출신 특유의 꼼꼼함과 사실관계를 중시하는 성격상 원칙에 맞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지만, 유족을 대하는 태도로는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생당은 “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촌철살인 답변을 내놓듯 유족에 대한 대응을 했다”고 꼬집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