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의 소비자 공략 지점은 두 가지로 확연히 나뉜다. 가성비와 프리미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접근하거나 비싸더라도 뛰어난 품질로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거나, 둘 중 하나다. 대형마트가 처음 자체브랜드(PB)를 내놓은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PB제품의 정체성은 가성비에 있었다.
‘대형마트 PB=가성비’의 공식을 깬 건 이마트 피코크였다. 이마트가 PB의 고정관념을 깨고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를 표방해 2013년 내놓은 피코크는 론칭 7년 만에 국내 주요 식품업체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마트 PB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식품업계를 긴장하게 만든 피코크는 어떤 부침을 거쳐 성장해 왔을까.
프리미엄 PB는 어떻게 탄생했나
대형마트 식품 PB의 역사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마트가 출시한 ‘이플러스 우유’가 마트 식품 PB의 시초였다.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의외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 했다. 가성비에 치우쳐 브랜딩과 디자인에서 소비자의 시선을 끌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피코크는 과감하게 프리미엄으로 승부를 걸었다. 상품 개발에는 신세계조선호텔 출신 셰프 등 전문 셰프를 투입했다. 5명의 셰프가 중식, 오리엔탈, 한식, 베이커리, 디저트, 음료 등 각자의 전문 분야 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레시피 개발과 상품 개선에 이르기까지 제품 개발에 셰프들이 깊숙이 개입한다.
치열한 식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맛’으로만 승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마트 상품 진열대에 놓인 수많은 경쟁제품 속에서 소비자의 눈에 띄려면 디자인에서도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마트 피코크 본부는 디자인 전담 부서를 따로 두고 제품 디자인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간결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피코크의 정체성을 표현해 왔다.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여 온 피코크는 2016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셰프가 개발하고 우수 협력업체가 만들어낸 맛과 디자이너들이 공을 들인 디자인으로 피코크는 프리미엄 식품 PB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피코크 매출은 2500억원으로 출시 첫 해인 2013년(340억원)보다 7.4배나 뛰어올랐다. 6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이마트 PB를 넘어서 우리나라의 대표 고급 식품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군 1000여종, 늘어나는 히트상품
피코크는 국내 대표 식품 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로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있다. 출시 당시 피코크가 만든 제품은 국·탕·찌개류 등 한식 중심으로 200종 정도에 불과했으나 점차 라인업을 확대해나갔다. 중식, 일식, 이탈리안 요리 등 ‘월드 퀴진’ 제품군을 늘렸다. 여기에 티라미수 케이크, 키쉬, 대만식 우유튀김 등 글로벌 디저트 메뉴로까지 영역을 넓혀 현재는 제품군이 1000종에 이른다.
이마트 피코크는 가공식품군을 넘어 밀키트 시장으로까지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10개월 동안 기획 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 오프라인 점포와 온라인 몰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국내 맛집과 협업한 ‘고수의 맛집’, 반찬류를 다루는 ‘피코크 찬’, 안주류 위주의 ‘피콕포차’와 ‘피콕 반점’ 등 브랜드를 세분화했다.
레드와인소스 스테이크, 밀푀유 나베, 훈제오리 월남쌈 등으로 시작했으나 지난해 9월 유명 맛집과 손잡고 선보이는 ‘고수의 맛집’ 시리즈로 가짓수를 15종까지 늘렸다. ‘맛이차이나’ 짜장면과 ‘초마짬뽕’은 유명 맛집의 맛을 재현해내기 위해 역량을 총동원했다. 생면을 사용하고 유명 맛집의 비법 레시피를 토대로 만들었다.
피코크는 ‘피코크 부채살 스테이크 밀키트’, ‘피코크 채끝살 스테이크 밀키트’, ‘피코크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밀키트’로 냉동밀키트 시장도 열었다. 냉장 밀키트는 유통기한이 4~5일 정도로 짧다는 게 강점이자 단점이다. 신선하게 먹을 수 있지만 번거롭다. 피코크는 냉장 밀키트의 신선함이라는 장점과 냉동 밀키트의 편의성을 살릴 수 있는 냉동 밀키트를 만들었다.
피코크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은 ‘잭슨피자’다. 지난해 1월 첫 선을 보인 ‘피코크 잭슨피자 3종’은 출시 첫 해 20만개에 이르는 판매고를 올렸다. 잭슨피자는 피코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제품이기도 하다. 이태원 유명 피자 맛집인 ‘잭슨피자’에 공을 들여 제품을 기획했고, 다른 냉동피자들과 달리 기계식 대량생산 대신 수제를 택했다. 도우를 펴기 위해 성형하는 공정 외에는 모두 사람이 직접 만들어 맛집의 맛을 구현해 냈다.
또 다른 대표 상품은 2014년 출시한 ‘피코크 티라미수 케이크’다. 누적 판매량이 300만개에 이르며 트리플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출시 첫 해 2만개, 2015년 5만개에 그쳤지만 2016년 소셜 미디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피코크 매출 1위 제품이 됐다. 2016년, 2017년 2년 연속 연간 판매량 100만개를 기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