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 어디서 시작된걸까. 이미 지난해 세계 각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들이 최근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전세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확산 시점과 전파 경로의 ‘재구성’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각국 의료진이 지난해 12월 이후의 환자 기록을 검토하면서 ‘코로나 타임라인’이 달라지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팬데믹 이전의 진료, 입원 및 검사 기록을 샅샅이 훑어본 뒤 코로나19로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 검사를 실시해 당시엔 간과했던 이른바 ‘0번 환자’(최초 유포자)들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프랑스 ‘국제화학요법학회지’에 지난해 코로나19에 감염됐던 것으로 보이는 환자의 사례가 공개되면서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중국 밖에서도 감염자가 있었을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프랑스 의료진은 파리 북동부 병원 2곳에서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감기 증상으로 입원했던 환자들의 샘플을 검사했고, 그 중 1명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 이 환자는 파리 근교에 거주하는 알제리 출신의 43세 남성 아미로쉬 함마르다. 중국 여행 기록이 없고, 지난해 8월 마지막으로 알제리에 다녀왔다.
함마르는 기침과 열, 두통 등의 증상을 앓다가 지난해 12월 27일 응급실에 실려왔고 상태가 호전돼 3일 후 퇴원했다. 함마르에게 이같은 증상이 나타난 뒤 10세와 4세 두 자녀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자녀들도 응급실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함마르는 “점점 호흡이 힘들어졌다.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진술했다.
함마르가 응급실에 실려가기 일주일 전 그의 아내도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 그녀는 대형마트 까르푸의 생선 판매대에서 일했다. 함마르는 “해당 점포는 샤를드골공항과 가깝기 때문에 외국인 손님이 많다. 나는 아내로부터 감염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근처의 생선초밥 판매대에는 중국 출신 점원들이 많았다. 연구를 이끈 이브 코헨 박사와 함마르는 “감염이 거기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목했다.
WHO는 “함마르의 사례가 지난 1월 전에 중국 밖에서 이뤄진 감염으로는 ‘공식적으로’ 보고된 첫 사례”라면서 “그 시점에 우한에서 다른 나라로 감염자들이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함마르가 유럽이나 프랑스, 또는 중국 밖의 0번 확진자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유럽에 코로나19가 퍼진 시점이 그간 파악됐던 것보다 한 달 이상 앞섰다는 얘기다.
함마르의 가족에게서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났던 지난해 12월엔 중국과 다른 나라를 오가는 비행편이 정상적으로 운항되고 있었다. 에어프랑스가 우한~파리 직항편의 운항을 중단한 건 한달 후인 1월 22일, 중국을 오가는 모든 비행기의 운항을 중단한 건 1월 30일이었다.
그 무렵 유럽 각국에선 이미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지역 내 감염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에선 1월 24일, 독일에선 1월 26일, 이탈리아에선 1월 31일 첫 확진자가 보고됐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중국을 여행한 적이 없는 확진자들이 무더기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보고된 건 그보다도 몇 주 뒤였다.
WHO는 각국이 코로나19 초기 의심 사례에 대해 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브리핑에서 함마르 사례를 언급하며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것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과거 샘플을 다시 분석해보면 더 이른 사례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코헨 박사는 “의료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됐는지, 어떻게 바이러스와 더 잘 싸울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면서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전염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도 지난해 말 이미 코로나가19가 전세계에 확산됐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프랑수아 밸루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유전학 교수 연구팀은 전세계 감염자 7600여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과학저널 ‘감염, 유전학, 진화’에 발표했다.
밸루 교수는 “서로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수집한 샘플을 분석했다”면서 “코로나19는 인간 감염이 확인되기 전에 전세계로 퍼졌고, 이미 많은 인구를 감염시켰을 수 있다. 0번 환자는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전염 속도에 대해서는 프랑스 연구진과 반대 의견을 내놨다. 밸루 교수는 “코로나19는 첫 감염 아후 극도로 빠르게 전파됐을 것”이라며 “전 세계 인구의 최대 10%가 이미 코로나19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은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수개월에 거쳐 느리게 확산되면서 어떤 지역에는 면역력을 형성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영국의 연구 결과는 그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전했다.
밸루 교수 연구팀은 또 198개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냈지만 더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형태로 변형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의료진도 지난달 코로나19 확산 이전의 사망 기록을 확인하던 중 캘리포니아주에서 57세 여성이 지난 2월 6일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냈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코로나19 첫 사망자를 보고받은 시점보다 거의 3주나 앞선 것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