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교착 국면이 길어지는 가운데 이성호 외교부 방위비분담협상 부대표가 조만간 경제외교조정관으로 승진할 것으로 6일 알려졌다. 경제조정관 승진 이후에도 부대표 직무를 겸임토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전담 직책이었을 때보다 협상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집이 최대 걸림돌인 상황이어서 실무협상의 중요성 자체가 낮아졌음을 방증한다는 시각도 있다.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이 부대표는 한·미 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이 최종 타결된 이후 경제조정관으로 이임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늦어도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이달 안에 타결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양국 실무진 차원에서 마련한 잠정 합의안을 돌연 걷어차면서 협상은 예상치 못한 교착 국면에 빠졌다. 이에 외교부는 이 부대표를 계획대로 경제조정관으로 승진시키되 협상 부대표직을 겸직토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대표는 지난해부터 우리 측 협상 대표인 정은보 방위비분담금 협상 대사를 보좌하며 실무를 이끌어 왔다. 정 대사는 기획재정부 차관보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어서 이 부대표가 외교 실무 차원에서 뒷받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총액 인상이 협상의 최대 관건인 상황이어서 구태여 협상팀 전원이 업무 준비를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다만 외교부 당국자는 “협상 수석대표인 정 대사가 있고 나머지 실무진이 받치는 형태로 업무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 부대표 승진 이후에도) 업무 준비 태세에 큰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일 우리 측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5일(현지시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화상 세미나에서 “미국은 (방위비 협상에서) 지금까지 매우 유연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측도 유연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부실 대응 논란에 빠진 트럼프 행정부가 지지율 만회를 위해 방위비 협상에서 더욱 경직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우리 정부는 잠정 합의안 내용을 넘어서는 인상안을 제안할 의사는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다. 때문에 어느 한쪽이 전향적인 양보안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교착 국면의 장기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