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은 지원 대상 기준 논란에 시간을 허비하느라 신속 지원에 실패했다. 경기가 2분기에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여 코로나19 사태의 경제 충격을 완화할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신속성보다 더 중요한 복지정책의 공감대 형성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논란 끝에 전 국민 지원 확정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의 자발적 기부를 놓고 아직 논박이 한창이다.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발적 기부를 독려하자 6일 농협과 중소기업중앙회 임직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잇따라 기부를 선언하고 나서는 어설픈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국민들이 스스로 금 모으기를 통해 국난을 극복한 외환위기 때와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곳간을 탈탈 털어가며 3조4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정부가 저리 닦달하니 지원금 받는 국민 입장에서는 민망함 그 자체다. 어지간한 기업의 경우 자칫 기부에 뭉그적대다가 여론의 뭇매라도 맞지 않을지 우려되는 분위기다. 민망함은 이런 캠페인성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정한 신용·체크카드를 통한 재난지원금 사용처에는 지역이기주의와 편 가르기 뉘앙스가 담겨 있다. 지원금은 세대주 주소를 기준으로 해당 광역 시·도 밖에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의 지원금 기여도가 있기 때문에 해당 지역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국민의 이동을 제한하려는 차원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내 지역 챙기기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코로나19로 망가진 지방 관광산업 활성화는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대형 백화점, 대형마트 등 사용 업종 제한은 반(反)대기업 정서가 묻어 나온다. 대기업도 납세자이고 그곳에 종사하는 직원들도 같은 국민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 살벌하다. 농협의 하나로마트를 허용하는 것을 보면 재벌 운영 여부가 사용 기준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는 소상공인 보호 원칙을 주장하지만 기간산업 보호 명목으로 항공사에 2조9000억원을 퍼주는 것을 보면 이율배반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또 이마트 쇼핑은 금지하면서도 이마트의 노브랜드 매장 쇼핑은 가능하다고 하니 그 기준마저 헷갈린다. 신세계푸드는 최근 햄버거 브랜드 ‘버거플랜트’를 ‘노브랜드 버거’로 바꾸면서 이마트 노브랜드에 로열티를 내고 있다. 노브랜드가 브랜드로 재탄생한 셈인데 정부의 원칙대로라면 대형마트로 분류돼야 맞을 것도 같다. 또 대형마트에서 개인사업 등록을 한 가게는 허용된다는데 국민들은 매장마다 돌며 가능 여부를 직접 물어봐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둘 다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았음에도 볼링장은 되고 당구장은 안 되는 것은 공무원들의 오래된 편견이 작용한 때문은 아닌가. 동네 노래방은 안 되고 술을 파는 음식점은 허용하는 것이나, 접객원을 두기는 매한가지인데 미용실은 되고 네일숍 등 위생업소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안부 관계자는 산업 분류에 그렇게 돼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지만, 탈세를 일삼는 조세포탈범이 아닌 이상 너무 엄격한 잣대가 아닐 수 없다.
사용 업종이 아이돌봄쿠폰과 공무원들의 정부구매카드(그린카드) 사용 업종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행정 편의적 발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제 활성화는커녕 국민들 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지 우려된다. 지원 대상처럼 사용처 역시 전 국민이 피해자라는 시각에서 출발함이 합당하지 않은가. 아직 재난지원금 신청 기한이 남아 있는 만큼 현실에 맞게 사용 업종 조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