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어린 시절 내게 읽어주고 싶은 ‘호랑이 이야기’

입력 2020-05-07 20:00 수정 2021-11-04 16:48
독특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화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에서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그림이다. 화가 이윤백은 크레파스를 사용해 귀여운 호랑이 바라의 삶을 그려냈다. 낮은산 제공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개방적일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 있다. 응용심리학회지에 발표된 이 연구는 이탈리아의 어린이 청소년 청년의 세 그룹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이들에게 이탈리아로 넘어온 이민자들에 관한 견해를 조사한 결과 ‘해리 포터’를 읽은 학생이 이민자나 소수자에게 더 호의적이고 관대한 생각을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의 원인을 사람과 생물에 관대했던 주인공 해리 포터의 성격에서 찾았다. 나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해리 포터’를 읽은 사람으로 특정하기에 연구팀의 분석은 지속적으로 동화를 읽은 사람 대부분에게 해당하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함께 모험을 떠나는 여정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협력하는 거의 유일한 세상이니까.

어릴 때 배워 놓을 걸,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영과 자전거다. 수영도 자전거도 힘이나 지력보다 두려움을 없애는 마음이 초기 실력 향상에 더 결정적이다. 물과 자전거를 둘러싼 수많은 이미지로 학습되어 있는 성인의 나에게 수영을 한다거나 자전거를 탄다는 건 두려움을 부추기는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정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른바 힘 빼기의 기술. 책을 읽는 데 적정 연령은 없다지만 같은 이유로 어릴 때 읽었으면 좋았을 걸, 아쉬운 마음이 드는 책들이 있다. 고정관념이 형성되기 전에 관념이 고정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만날 때 특히 그렇다.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선택 후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 예컨대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 같은 책을 어릴 때 읽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지금과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건 아니더라도 세상을 좀 더 관대하게 볼 수는 있었을 것 같다.


김국희 작가가 글을 쓰고 이윤백 화가가 그림을 그린 동화책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는 사냥이 힘들었던 호랑이가 어느 날 채식으로 전향한 후 변해 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모두가 본능이라고 말하는 성향과 맞지 않아 정체성을 고민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자 무리에서 이탈한 소수자가 경험하는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주어진 삶을 원하는 삶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택하는 바라의 시선만이 아니라 바라를 바라보는 시선도 현실적으로 그린다. 바라는 주변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기로 한다. 그렇게 하면 함께 새로운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건 바라에게 가슴 따뜻한 일이었으니까.

바라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비건 호랑이 포스터를 만들어 나무에 붙인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다. 어떤 이들은 바라의 채식이 거짓말이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무리를 욕보인 나약한 호랑이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바라는 거짓말쟁이거나 패배자였다. 이것은 다수가 소수를, 강자가 약자를 응징하는 ‘유구한’ 방법이다.

지난주 김혜진의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에 대한 서효인 시인의 글을 읽고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가 생각난 까닭은,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권의 책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용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것을 거부하는 바라처럼 소설 속의 어떤 이도 ‘남일도(島)’, ‘남토(남일동 토착민)’라 불리는 동네 남일동에 살며 모두가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일, “절차도 방법도 터무니없이 까다롭고” 어렵다는 걸 알아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던 일들을 구청 민원실에 이야기하고 일일이 청원서를 받아내며 바꾼다. 이들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이들의 힘이 없는 세상은 더 빨리 더 무분별하게 망가질 게 뻔하다. 용기 있는 선택을 지지하는 것. 기왕이면 편견과 선입견으로 생각이 굳어지기 전부터 지지하며 바라를 거짓말쟁이나 패배자로 낙인찍는 이들처럼 망가지지 않는 것. 내가 덜 나빠지는 것이 세상을 덜 나쁘게 만드는 일이라는 믿음까지 낭만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