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고려대가 현재 고교 2학년이 치르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영어의 비중을 끌어올렸다. 이들 두 대학보다 영어 비중이 높았던 연세대는 기존 비중을 유지했다. 이른바 ‘스카이’로 불리는 세 대학의 대입 정책은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끼친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 영어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흐름이 앞으로 더 뚜렷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영어 절대평가는 당초 “출혈 경쟁 막겠다” “영어 교육정상화” 등을 명분으로 도입됐으나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대입 정책 탓에 불과 3년 만에 좌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영어 등급별 점수차 ‘0.5→2점’
서울대는 지난달 30일 2022학년도부터 적용되는 수능 영어 반영 방식을 공개했다. 서울대는 등급이 떨어지면 점수를 깎는 ‘감산’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올해(2021학년도)는 2등급부터 0.5점씩 점수를 뺀다. 그래서 9등급을 맞아도 -4점이다. 내년 입시에선 2등급은 0.5점 감점으로 동일하지만 이하 등급에서는 낙폭이 커진다. 3등급으로 내려가면 -2점이고 4등급 -4점, 5등급은 -6점으로 등급이 떨어질 때마다 2점씩 감점키로 했다. 내년 입시 4등급(-4점)은 올해 9등급(-4점)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고려대도 마찬가지다. 올해 입시에서는 2등급으로 내려앉으면 -1점이었다. 이후 2점씩 감점해 9등급은 15점을 깎았다. 내년에는 2등급부터 3점씩 깎아 내려가 9등급을 받으면 -24점이 된다. 연세대는 종전 방식을 유지한다. 연세대는 종전에도 영어 반영비율이 상당했다. 1등급을 100점으로 놓고 2등급은 95점, 3등급 87.5점 등으로 등급이 내려갈 때마다 점수를 깎아 최하인 9등급에는 5점을 줬다. 즉 수능 영어를 망친 학생은 연세대를 포기하고 서울대와 고려대를 노리는 방식의 입시 전략이 유효했다. 하지만 서울대와 고려대가 영어 비중을 대폭 끌어올리면서 전체적으로 영어의 중요도가 상승하게 됐다.
영어 4등급으로 의대와 서울대 가능
서울대와 고려대는 영어 비중을 왜 늘렸을까. 일단 입시 전문가들은 영어 절대평가 전환으로 변별력이 국어·수학에 편중된 기형적인 구조를 꼽는다. 수능 출제 당국은 영어 절대평가 전환 이후 변별력 대란을 우려한 듯 국어·수학 난도를 끌어올렸다. 국어가 특히 어려워졌다. 만점자에게 주는 표준점수 최고점이 역대 최고인 150점으로 올라 수능 출제 당국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서울대와 지방 의대 합격자 중에 영어 4등급도 있었다. 출제 당국이 어떤 과목을 어렵게 내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지금 시스템이 공정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영어가 녹록치 않았던 이유도 있다. 도입 첫해인 2018학년도 1등급 비율(90점 이상)은 10.03%였다. 그러나 이듬해 1등급 비율이 5.30%로 반토막 났다. 절대평가여도 난도 조절을 통해 얼마든 등급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작년에는 6·9월 모의평가에서 5~7% 수준이었고 수능에선 7.43%였다. 출제 당국은 “적정 난도였다”라고 평가했다. 대학 입장에선 5~8%로 1등급 비율이 유지될 경우 학생을 변별할 과목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절대평가 무색, 치솟는 영어 사교육비
2014년 8월 27일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은 절대평가 전환을 처음 공식화하며 “과도한 사교육 시장과 수십년에 걸친 영어 투자가 무슨 결실을 내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1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소모적 경쟁을 줄이고 ‘5지 선다형 시험용’ 영어 교육에서 벗어나자고 강조했다.
우려대로 다른 과목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영어 사교육비도 오히려 치솟았다. 고교 진학 전 영어를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선행학습 수요와 진학 후 등급 경계에 있는 학생들이 사교육을 두드린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가 지난달 결과를 공개한 2019년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영어 9만4000원, 수학 9만원, 국어 2만3000원이었다. 전년 대비 영어 9000원, 수학 7000원, 국어 2000원 올랐다. 영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어 절대평가가 영어 사교육비 절감이란 취지를 실현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어 절대평가는 과도기적 성격이 강했다. 고교생의 수업 선택권을 강화하고 고교 교실 정상화를 명분으로 수능을 자격고사 수준으로 힘을 빼자는 논의가 진행되던 상황에서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됐다. 수능 절대평가가 공약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 이런 흐름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이른바 ‘조국 사태’ 후 서울 주요 16개 대학이 정시 비중을 40%이상 올리도록 강요받는 상황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어정쩡한 영어 절대평가 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오히려 가중됐다. 다시 상대평가로 되돌리는 것도 ‘개혁 후퇴’란 비판으로 쉽지 않은 만큼 고교학점제용 새 대입 정책까지 이런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