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건축, 풍요로운 공간 연출 가능한 ‘단독 지명설계’ 해야”

입력 2020-05-08 00:05 수정 2020-05-10 17:43
한국교회건축가회 회원들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열린 ‘교회건축 설계자 선정은 이렇게 하라’는 주제의 좌담회에서 의견들을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윤승지 이용우 양민수 최동규 박경숙 김기영 최두길 이만수 건축가. 강민석 선임기자

좌담회 참석자

김기영 건축가 (소선제), 이만수 건축가 (유오에스)
박경숙 건축가 (세진), 이용우 건축가 (칸도시)
양민수 건축가 (아벨), 최동규 건축가 (서인)
윤승지 건축가 (규빗), 최두길 건축가 (야긴)

국민일보와 한국교회건축가회는 바람직한 교회건축 문화 확립을 위해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대회의실에서 ‘교회건축 설계자 선정은 이렇게 하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교회건축 설계 전문인 김기영(소선제), 박경숙(세진), 양민수(아벨), 윤승지(규빗), 이만수(유오에스), 이용우(칸도시), 최동규(서인), 최두길(야긴) 건축가가 참석했다. 이들은 바람직한 교회건축을 위해서는 설계경기(현상설계)가 아닌 지명설계를 해야 한다, 제대로 된 CM이 아니라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입을 모았다. CM(Construction Management·건설사업관리)은 건축주인 교회를 대신해 공사의 전반을 맡아 계약, 관리,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건축의 시작은 설계자를 선정하는 데 있다. 어떤 설계자를 선정하느냐에 따라 교회 건축의 방향이 정해진다. 이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양민수=교회건축 설계자 선정은 일반적으로 경쟁 구도인 설계경기(현상설계)와 단독 지명설계로 진행된다. 설계경기를 하려면 교회환경에 적합한 최적의 설계지침서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지침서가 부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계지침서는 설계경기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잘 준비된 경우는 많지 않다. 또 설계경기는 교회 구성원의 갈등 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왜냐하면 작품에 대한 투표결과가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품 3개를 놓고 투표한 결과가 37 : 33 : 30이라고 할 때 여기서 1등은 전체 찬성의 37%이고 반대의 합은 63%이기에 교인들의 불만족도가 전체적으로 높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단독 지명설계’라고 생각한다. 이 방법은 대화로 시작한다. 건축공간과 예산 그리고 규모, 준공 후 유지관리에 대해 협의하며 설계한다. 디자인 역시 여러 대안을 제시해 구성원의 갈등을 없애고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또 현실적인 공사비와 쾌적하고 풍요로운 공간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윤승지=현상과 지명 외에 두 가지를 보완한 서류 심사도 있다. 설계안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적이나 경험, 철학 등을 제출한 서류로 판단해 선정하는 것이다.

이용우=설계 공모를 보고 단기간에 만들어진 현상 설계안이 교회 측에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그런데도 현상설계를 선호하는 것은 좋은 안을 선정하기보다는 공정성을 앞세워 책임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뒷말을 안 듣겠다는 것이다. 또 설계안을 놓고 성도들 의견을 수렴한다고 인기 투표하듯이 하는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성도들 표를 많이 얻는다고 꼭 좋은 작품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기투표는 오히려 교인들 스스로 선택했으니 나중에 마음에 안 들어도 가만히 있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최동규=새문안교회는 현상설계를 했지만 먼저 전문가 심사를 거친 후 당회에서 투표했다. 어떤 교회는 전문가와 비전문가(교회 관계자)가 함께 심사하는데 이는 의사와 일반인이 함께 수술하는 것과 같다. 건축도 전문분야라고 인정한다면 일차 전문가 평가 후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최두길=현상 설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당선작을 뽑아도 끝까지 유지가 안 된다. 준공 때까지 도면이 다 뜯어 고쳐진다. 시간과 비용 낭비다. 또 경기를 위해 설명회를 하는데 비전문가는 그 내용을 들어도 알 수 없다. 설명회 잘한다고 설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가격이 싸면 선정 1순위다. 작품성을 분별 못 하니까 그렇다. 대안은 건축사를 두세 명 선정하고 인터뷰로 정하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 낭비가 없다.

-요즘은 교회를 건축할 때 CM을 선호한다. 건축에 전문성이 없는 교회를 돕는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를 악용해 이익을 챙긴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윤승지=프로젝트 전반에 대해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설계자 시공사 건축주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건축을 진행하는 제대로 된 CM은 좋다. 하지만 현재의 교회건축 CM은 그럴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그냥 CM을 빙자해 감리를 수주한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은 감리는 설계자가 하는 게 바람직하다. CM을 내세워 감리하는 이들을 보면 대개 도면을 이해 못한다. 그러면 현장에서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 또 CM이 공사비를 절감해준다고 하는데 이는 설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공법을 쓸 것인지, 물량을 어디에서 줄일 것인지 등의 균형을 잡아주는 이가 설계자다. 설계를 모르고 공사비를 아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사비를 아낀다고 저가 마감재를 쓰고 꼭 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건물을 밋밋하게 만든다. 수준을 떨어뜨린다. 또 시공사 선정도 교회가 아닌 CM에게 협조하는 곳을 선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용우=CM이 건축주 편에 서려면 공사 전 기획단계부터 설계, 감리, 시공, 유지관리까지 자문해야 하는데 그 앞뒤 과정 빼먹고 감리만 한다. 말은 설계 전 단계부터 다 해준다고 하지만 실제는 하는 일 없이 감리만 한다. 사실 감리는 제대로 하려면 설계자가 해야 한다. 건축물을 가장 잘 아는 이가 설계자다.

양민수=교회건축 감리는 상주감리와 비상주 감리로 구분된다. 1000㎡ 미만인 소규모 건축물은 비상주 감리, 그 이상은 상주감리를 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의 건축공사 ‘감리 세부기준’의 감리업무는 사무관리, 공정관리, 품질관리, 시공관리로 구성돼 있다. 이같은 4단계의 업무에는 교회가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모두 포함돼 있다. 굳이 CM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만수=CM은 목회자의 방패막이 역할도 한다.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건물의 품질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건축은 설계도가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돌발상황도 있고 설계도에 표현 안 된 부분도 있다. 이를 CM이 알아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CM을 쓰느니 설계자를 감리자로 세우는 게 보다 효과적이다.

박경숙=교회 건축은 감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운 교회의 특수성과 시공단계별로 잦은 설계변경이 발생하기 때문에 감리는 사전검토를 통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문제를 차단하는 중요한 업무다. 이러한 감리의 중요성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CM이나 감독관의 보조역할로 이해하기 때문에 감리 비용을 적당한 선에서 하려 하는데 감리의 주요성을 인지하고 공사현장의 능동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김기영=감리는 두 경우다. 설계 당사자인 경우와 설계자가 아닌 경우다. 설계자가 감리하면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건축물은 유기체와 같아서 건축되는 과정에서 최적화되는데 그것이 감리가 하는 일이다. 건축에서 완벽한 설계 도면은 없다. 표현의 한계가 있고 시공과정에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색상 질감 등은 설계자의 머릿 속에 있다. 설계자가 감리하면서 이를 반영한다. 설계자와 감리자가 분리되면 건축과정에서 설계자의 개입이 전면 차단돼 설계자의 의도가 반영되기 어렵게 된다.

최두길=한국교회에서 CM은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됐다. 재건축 재개발 협상을 위해 등장했다. 여기에 감리까지 하면서 ‘감리형 CM’이 됐다. 돈을 더 받아내는 것은 건축사가 하기 어렵다. 목회자 장로도 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는 CM이 필요하다. 그러나 CM이 있다고, 감리를 따로 세웠다고 교회 건축이 잘 마무리될 것이라고 안심해선 안 된다. 에너지, 단열, 피난시설 등 기준이 수시로 바뀌는데 이를 확인하고 반영할 이는 설계자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완공했는데 기준에 안 맞으면 그 위험은 전적으로 교회 몫이다. 따라서 교회 건축 전반을 설계자와 수시로 상의해야 한다. 바람직한 교회건축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동반자는 설계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