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외부인 나가주세요”, 팽팽한 월성 ‘맥스터’ 증설

입력 2020-05-05 19:09 수정 2020-05-06 00:19
경북 경주시 감포읍 주민들이 지난 4일 주민회관에 모여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맥스터’ 증설 관련 설명회를 듣고 있다.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 ‘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공론화 작업이 우여곡절 끝에 막이 올랐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2016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맥스터 추가 건설을 위한 운영변경 허가안을 제출한 지 4년 만이다. 현재 97.6% 저장률을 보이고 있어 내년 말까지 시설을 늘리지 않으면 월성원전 가동중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론화 첫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경북 경주시 감포읍 감포복지회관에서 지난 4일 진행된 주민 의견수렴 사전설명회에는 180여명의 감포읍 주민이 참석했다. 복지회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는 주변 지역인 동경주 주민의 의견만을 반영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이날도 환경단체 등에서 설명회 참석을 위해 회관을 방문했으나 주민 참석만이 허용돼 1층에서 가로막혔다.

지역실행기구는 무작위로 지역주민 3000명을 선정한 뒤 참여 의사가 있는 응답자 중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기준으로 150명의 시민참여단을 구성할 예정이다. 시민참여단은 사전 워크숍, 학습, 종합 토론회 등의 과정을 거쳐 이르면 6월 내 결론을 낸다.

주민 의견은 엇갈렸다. 한 주민은 “원전 덕에 매해 나오는 지원금이 얼마인지 아느냐. 상권 활성화 효과도 있다”며 원전의 경제적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원금은 발전량에 근거해 조성되는데 올해는 66억원이 조성돼 주변 지역 교육 여건 개선 사업, 주민 종합건강검진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반면 다른 주민은 설명회에서 “150명을 뽑아 교육한다는 것도 찬성으로 세뇌교육하려는 게 아니냐”며 “주민설명회도 보여주기식 요식행위 같다”고 날을 세웠다. 또 다른 주민은 “정말 맥스터가 안전한지 묻고 싶다”며 지역실행기구에 소속의 김경희 환경운동실천협의회 대변인을 지목해 답변을 요구했다. 김 대변인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위험한 것은 맞지만 맥스터가 기술적으로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답했다.

5년째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의 이장직을 맡고 있는 홍중표(52)씨도 “2016년 경주 지진 때도 원전으로 인한 피해는 전혀 없었다”며 “원전으로 인한 피해를 받는 것도, 혜택을 받는 것도 인근 주민인데 외부인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원자로 안에서 일정 기간 연소해 더이상 충분한 열을 발생할 수 없어 교체되는 핵연료다. 발전에 사용된 핵연료는 잔열을 식히기 위해 습식 저장소에서 5~6년간 보관한다. 열이 어느 정도 식으면 건식 저장시설로 옮긴다. 건식 저장시설에 보관된 사용후핵연료는 자연바람에 의해 냉각되며 저장소는 별도 전원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월성 본부에는 캐니스터와 맥스터 두 가지 건식 저장시설이 있다. 캐니스터는 원통형 건식 저장시설로 캐니스터 1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강철 원통 1개가 들어간다. 기둥 1개에는 540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되는데 월성 본부의 캐니스터 300기는 16만2000다발의 사용후핵연료를 보관 중이다. 직육면체의 맥스터는 멀리서 보면 工(공)자 모양에 가깝다. 맥스터 1기에는 강철 원통 40개가 들어가 2만4000다발의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다. 월성 본부는 맥스터 7기를 보유하고 있다.

맥스터는 캐니스터에 비해 공간 효율성이 높다. 월성 본부의 맥스터 7기와 캐니스터 300기는 비슷한 용량을 보관한다. 하지만 부지에서 맥스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캐니스터의 3분의 1 정도다.

월성 본부의 건식 저장시설 포화도는 97.63%다. 현재와 같은 발전량을 유지하는 경우 내년 11월 저장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장시설이 포화되면 다 쓴 연료를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원전 가동이 불가능하다. 맥스터 7기가 추가로 건설되면 사용후핵연료 걱정 없이 2027년까지 중수로 4기를 운영할 수 있다. 한수원은 맥스터 증설에 19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원안위가 지난 1월 한수원의 맥스터 추가 건설 목적의 운영변경 허가안을 승인하면서 지난해 신설된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도 본격 가동됐다. 지역실행기구는 원전 반경 5㎞에 속한 기초자치단체 소속의 만 19세 이상 경주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원전의 영향권 안에 든다며 참여를 주장했던 울산 북구 주민의 지역실행기구 참여는 어려워졌다. 네 차례 주민설명회를 거친 뒤 시민참여단을 구성, 이르면 다음달 말 종합 토론회를 실시한다.



경주=글·사진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