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네팔인 A씨(36)는 최근 “다음 달 1일까지 공장에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회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공장 운영이 어렵다”고만 했다. A씨를 포함해 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네팔인 6명 모두 무급휴가를 강요받았다.
반면 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 30여명은 모두 유급휴가를 보내고 있다. A씨는 항의했지만 “비자 연장을 안 해줄 것”이라는 사장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취업비자 유효기간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A씨는 “직장에 고용돼 있어야 비자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사장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가라앉으며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는 추세지만 국내 이주노동자의 일상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우리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각종 재난 및 고용지원 정책 등에서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등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삶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네팔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하는 B씨는 현재 미등록체류자(불법체류자)로 수도권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감 자체가 없어졌다. B씨는 “모아놓은 돈을 아껴 쓰며 살고 있다”며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동권 제한 등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도 발견된다. 경기도 여주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C씨는 지난 1월 중순 이후 석 달 넘게 공장 기숙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주가 한국인과 중국인 노동자는 외출을 허가하면서 방글라데시인들에게만 외출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C씨는 “외출하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게 이유라는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차별이 더 생생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지급하는 재난지원금도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경제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은 주민세,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내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재난 시 정부가 지원하는 대상에서는 제외돼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한국경제의 큰 축을 맡고 있다. 2017년 이민정책연구원이 펴낸 ‘국내 이민자의 경제활동과 경제기여 효과’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100만명 이상의 이주민들이 국내 노동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일으킨 경제적 효과는 생산효과 54조6000억원, 소비지출 효과 19조5000억원을 합쳐 총 74조1000억원으로 추정됐다. 2026년에는 이주민이 일으킬 경제적 총효과가 162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를 은연중 배제시켜온 우리 사회의 민낯이 국가적 재난 시기를 맞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는 “싱가포르의 코로나19 확산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비롯된 것처럼 이들을 계속 사각지대에 방치한다면 한국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