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교회’ 이 땅에 온 아프리카 이주민 품다

입력 2020-05-07 00:07
자유로운교회 성도들과 박혜원 목사(왼쪽 두 번째)가 지난해 6월 옛 예배당인 경기도 양주 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동두천에 있는 현 교회 3층의 ‘자유로운 치과’에서 김정록 원장(오른쪽)이 아프리카 여성을 진료하는 모습. 자유로운교회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가운데 최소한의 방역 물품인 마스크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당히 줄을 서서 공적 마스크를 사보는 게 꿈인 이들은 미등록 이주민이다.

경기도 동두천에선 아프리카 출신의 미등록 이주민들이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주6일, 일주일 72시간 넘게 한국인이 꺼리는 가죽공장과 섬유공장, 닭을 잡는 도계공장 등지에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으로 일한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편견 차별 혐오와 싸우는 게 일상인 이들을 지역의 작은 교회가 돌보고 있다.

동두천 자유로운교회를 지난 1일 찾았다. 박혜원(50) 목사가 1층의 작은 도서관과 식당부터 안내했다. 한쪽 벽에 라면과 치약 등을 담은 긴급구호 물품이 포장돼 있었다.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진 아프리카 성도들을 위해 준비한 생필품 상자다. 2층 예배당엔 물리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기 위해 의자가 하나씩 떼어져 놓여 있었다. 박 목사가 말문을 열었다.

“50명이 예배드리던 공간인데, 거리 두기를 준수해 17석만 놓았습니다. 주일에 성도들이 더 많이 오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동네에서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걸 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역 지침을 일부러 더 엄격하게 지킵니다. 안 그래도 이유 없는 혐오와 편견에 시달리는 이들인데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동두천은 코로나19 청정지역입니다.”

자유로운교회는 아프리카 성도 40~50명에 한국 성도 10여명이 함께 출석한다. 2018년 4월 부활주일을 맞아 예배를 시작했다. 박 목사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의 큰 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담당하다 경기북부이주민센터를 설립하고 교회까지 개척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먼저 와서 한국인 목사가 자신들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두천에 미2사단 관련 인원이 줄면서 경기는 가라앉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늘어났습니다. 주변에 영세 공장이 많아 일자리가 있고, 주민들이 미군을 경험해서 아프리카인에 대한 거부감이 그나마 덜합니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면 집을 구할 정도로 주거비용도 쌉니다. 경기북부이주민센터에서 이들에게 경기도 김포의 대형 슈퍼마켓을 연결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물을 나누고 있었는데, 하루는 한 성도가 와서 ‘몸의 양식과 더불어 마음의 양식도 나눴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사도행전 16장 9절,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유럽인 마게도니아로 진로를 변경하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10여 차례 사전 모임 끝에 아프리카계 이주민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박 목사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 “이주민들의 삶 전체를 계속 돌봐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민 신청자는 3개월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동행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미등록 이주민인 이들은 건강보험이 없어 비용이 만만찮다. 당장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아프리카 성도의 병원비도 구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에선 마스크 줄서기조차 못하는 아프리카인들에게 3000장 넘는 마스크를 백방으로 구해 전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영세 공장이 문을 닫거나 조업 시간이 줄어들어 성도들이 일자리를 찾아 지방으로 흩어지고 있는 게 걱정거리다.

박 목사는 “여기가 아프리카 선교지”라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교로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사는지 실제 목격해야 조금이나마 바뀔 기회가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내주는 사역을 하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했다. 박 목사는 “제가 조건 없이 나그네인 이들을 도우면 이들도 도움받은 경험을 언젠가 더 어려운 이에게 나누는 날이 올 것”이라며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한 뼘 정도 확장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교회 3층엔 특이하게도 치과가 있다. 밖에는 간판이 없지만, 안에는 ‘자유로운 치과’ 표시가 있다. 대형 기자재와 치료용 의자, 실내 장식이 여느 치과와 똑같다. 주일 오후에만 운영하고 아프리카인들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서울 서초구 화음치과의원 김정록 원장이 지난해 8월부터 매주 주일 오후 1시에서 6시까지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진료 봉사를 해왔다. 코로나19로 잠시 진료를 중단했지만, 이달 중순부터 재개할 예정이다. 박 목사는 “우리 교회는 자립대상(미자립)인데, 3층 치과의 월세와 전기세를 감당한다”면서 “대형교회도 갖춘 곳이 많지 않은 치과 시설까지 있는 교회”라며 웃었다.

김 원장은 서울의 한 교회 집사로 아프리카 의료 봉사를 꿈꾸다 박 목사를 알게 돼 억대의 사비를 들여 봉사 현장을 실제 치과와 똑같이 만들었다. 무료 진료라고 해서 아프리카인들이 무턱대고 기다리지 않도록 예약제로 운영한다. 김 원장은 “10여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 진료 봉사를 해왔는데 현장 시설이 열악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이번엔 제대로 갖춰보려 했다”면서 “우리 사회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 목사님들이 지치지 않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동두천=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