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모르는 34세 에너자이저… “정말 많이 뛰어다닐 것”

입력 2020-05-06 04:09
광주 FC 김효기(맨 앞)가 지난달 17일 광주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열린 팀 훈련에서 후배들과 땀 흘리며 밝게 웃고 있다. 광주 FC 제공

“저는 뚜렷한 장점이 없는 선수에요. 탁월하게 빠른 것도, 슈팅이 기가 막힌 것도 아니죠.”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1 광주 FC에 합류한 공격수 김효기(34)는 4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이렇게 설명했다. ‘저니맨’이라 불릴 만큼 그의 인생은 숨가빴다. 한 팀에서 2년을 초과해 주전급으로 활약한 적이 없을 정도다. 30대 중반이지만 통산 기록이 126경기 출전, 28골 9도움에 그친 이유다. 특출난 선수에 비해 1%씩 부족했기에 주전으로 자리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터다. 충주중 3학년 시절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유소년팀에 진출했지만 국내-현지 에이전트 간 분쟁으로 약 7개월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던 건 서막에 불과했다. 대학 졸업 후 처음 몸담은 프로팀이 전통의 강호 울산 현대였다. 신인 김효기는 쟁쟁한 멤버들에 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김효기는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 임대를 선택했다. ‘실업팀 가면 프로 선수 생활은 끝이다’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뛰고 싶었던 것이다. 김효기는 2011년 미포조선의 우승을 이끌며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K리그에서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27세의 김효기는 또다시 K3리그 화성 FC행을 택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문제를 해결하며 축구를 계속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김효기는 “주변 친구들에 비해 나만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탈모가 생길 정도로 힘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군 전역 후 돌아오니 감독부터 구단 직원까지 울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바뀌어 있었다. 윤정환 감독의 시즌 구상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울산에서 5경기 출전에 그친 김효기는 이번엔 K리그2 FC 안양으로 이적해야 했다. 그 후 더 가혹한 일이 생겼다. 동계훈련을 다 끝내놓고 발등 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은 것. 가까스로 극복하고 후반기 15경기 8골 2도움이란 ‘특급 활약’을 펼친 뒤에도 마찬가지다. 명문구단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었지만 리그엔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겐 긍정적인 마음가짐, 성실한 훈련태도, 뛰어난 활동량이란 장점이 있었다. 다시 안양으로 돌아가 2시즌 46경기 9골 3도움을 올렸고, 이어 K리그1 경남 FC로 이적해 60경기 11골 4도움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8년엔 경남의 깜짝 준우승을 이끌며 팀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켰다. 중요한 경기마다 번뜩이는 플레이로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끝없는 생존 경쟁이 펼쳐지는 프로 무대에서, 김효기는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버텨냈다. 김효기는 “화성에 있을 때도, 전북에 있을 때도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누구보다 많이 훈련했다는 믿음이 있어서였다”며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3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니가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절 대해주셔서 저도 긍정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김효기는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그는 “경남에서 준우승 바로 다음 해에 강등됐을 땐 선수단에서 소통도, 자신감도 없었다”며 “그러나 올해는 고참으로서 상황에 맞게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주며 정말 많이 뛰어다닐 생각”이라며 웃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돌아본 김효기는 마지막 각오를 덧붙였다. “사연 있는 선수들이 많아요. 저도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버텼네요. 주목 받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팀이 K리그1에서 꼭 살아남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광주=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