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에 ‘집관 영상’ 장외선 ‘직관’… 무관중에도 가득찬 응원

입력 2020-05-06 04:07
한 어린이가 어린이날인 5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의 경기 전 야구공 모양의 튜브에 들어간 채 ‘비접촉 시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팔을 더 위로 들면서 손만 몸으로 붙이는 느낌으로 던져. 오늘 선발은 우찬이 형이잖아.”

2020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 개막을 2시간 앞둔 5일 낮 12시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 앞에서 LG 트윈스의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5명의 남학생 무리가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키가 큰 1명이 LG 개막전 선발투수 차우찬의 투구 동작을 따라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왁자지껄하게 설전을 벌였다. 좌완으로는 이례적으로 강속구를 뿌리는 차우찬의 투구 동작 흉내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학생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관객에게 개방되지 않은 경기장 안으로 입장할 수 없었다. 차우찬의 투구 동작을 따라한 중학교 1학년생 박지혁(13)군은 “장내에 있는 LG 선수들과 교감할 생각으로 잠실구장 앞까지 찾아왔다”고 말했다. 어렵게 이뤄진 프로야구 정규리그 개막의 축제 분위기를 장외에서나마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프로야구에서 어린이날은 정규리그 초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날이다. 하지만 올해 어린이날 경기는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구름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쏟아냈어야 할 어린이날의 잠실구장은 공이 포수 미트로 들어가고 방망이에 맞는 타격음, 그 사이사이에 더그아웃에서 들려오는 선수들의 박수소리, 텅 빈 관중석 앞에서 펼쳐진 LG 치어리더와 마스코트의 응원 공연으로 적막을 깼다.

중국 CCTV 기자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경기를 촬영하고 있다. 잠실=권현구 기자

그러나 이마저도 미국·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한 한국 방역 덕분에 얻은 ‘결실’이다. 잠실구장 주변 상인들은 모처럼 매장을 열고 간간이 드는 발걸음을 밝은 미소로 맞이했다. 잠실구장과 연결된 서울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안에서 야구용품을 판매하는 점주는 “코로나19로 닫았던 가게를 이날에야 열었다. 올해 출시된 각 팀 유니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일부 찾아왔다”며 “문을 열고 희망을 찾은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말했다.

LG는 공격과 수비를 교대할 때마다 틈틈이 전광판에 팬들의 응원 영상을 상영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우승을 향한 염원을 담은 문구를 현수막도 외야 관중석 곳곳에 설치됐다.

KIA 타이거즈 팬들이 KIA챔피언스필드 외야 바깥 철 기둥 뒤에 모여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하는 KIA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광주=이동환 기자

야구장 주변의 설렘은 인기 구단 KIA 타이거즈의 안방 광주에도 깃들었다. 광주 KIA챔피언스필드 외야 너머에는 약 20명의 팬들이 경기 시작을 앞두고 몰려들었다. 이들은 장내를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경기장의 구조적 특성 덕에 검은색 철 기둥을 사이에 두고 “넘버원 투수 양현종 파이팅” “나지완 훨훨 날아보자”와 같은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12세 아들과 함께 찾아온 정경채(47)씨는 “어린이날이라 놀이동산에 가자고 하니 2년 전부터 KIA 팬이 된 아들이 싫다고 했다”며 “개막이 늦춰지는 동안 아들이 유튜브를 보며 응원가까지 연습했는데 이렇게 멀리서나마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 전광판에 어린이들이 애국가 제창하는 영상이 상영되는 모습. 연합뉴스

경기 시작 후엔 외야 밖 전체를 수십명의 팬들이 가득 채웠다. 팬들은 치어리더들의 응원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했다. KIA 팬들의 ‘영상 응원’도 함께했다. KIA는 ‘집관’(집에서 관람)하는 팬들이 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찍어 응원 문구와 함께 구단 공식 메신저로 보내면 이를 실시간으로 전광판에 띄워 ‘직관’의 분위기를 살렸다.




김철오 기자, 광주=이동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