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디지털 보험사인 ‘캐롯손해보험’은 올해 초 출범하자마자 업계 주목을 받았다. 핵심 보장만 추려서 담은 월 990원짜리 운전자보험을 내놓은 데 이어 필요할 때만 켜서 쓸 수 있는 스위치 개념의 레저상해보험도 출시했다. 주행거리만큼 보험료를 내는 ‘퍼마일(Per-Mile) 자동차보험’도 업계에 첫선을 보였다.
캐롯손해보험이 기존 보험상품의 틀을 깨면서까지 구애한 고객층은 2030세대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8일 “우리 사회의 주소비층으로 떠오르는 세대의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경영전략”이라며 “보험뿐만 아니라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언택트·짠테크·파이어 세대”
산업계에서는 2030세대를 ‘MZ세대’로 통칭하기도 한다. M세대는 밀레니얼(Millennials) 세대로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 출생자를 일컫는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이들이다. MZ세대는 1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아우른다.
다양한 정보통신(IT) 기술의 홍수 속에서 자란 MZ세대는 디지털 시대의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업들에 있어서 이들은 잠재 고객이면서 업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금융권을 포함한 주요 산업 분야가 이들을 공략하는 이유다.
매년 MZ세대의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하는 ‘대학내일 20대연구소’에 따르면 MZ세대는 온라인과 SNS에 익숙하다. 오프라인, 대면 만남만큼이나 ‘비대면(Untact·언택트)’ 만남이 편한 부류다.
동시에 소유보다는 공유로 만족감을 추구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카셰어링, 전동 킥보드 공유 등 ‘공유 소비’도 자유롭다. 연구소 관계자는 “MZ세대는 ‘원하는 순간에 딱 원하는 만큼만’ 니즈(욕구)가 충족되길 바라는 부류”라며 “자신의 삶의 방향과 현실을 고려해 균형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와 저축, 투자 등 경제생활에서도 이들만의 트렌드가 생기고 있다. 이른바 ‘파이어(FIRE)족’과 ‘N잡러’ ‘짠테크족’의 부상이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딴 신조어다. 부를 일궈 가능한 한 빨리 퇴직을 준비하는 이들이다. 그러려면 알뜰하게 살면서 돈을 모아야 하는데, 이는 ‘N잡러’를 등장시켰다.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직장인이다. N잡을 통해 부수입을 마련하고 지출은 줄이면서 저축을 늘리는 부류가 곧 짠테크족이다.
MZ세대 마음 읽은 금융상품 ‘봇물’
금융권은 MZ세대의 생활·저축·소비 패턴을 일찌감치 파악해 활용하고 있다. 가입자 1200만명을 둔 카카오뱅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선보인 ‘카카오뱅크 저금통’은 입출금 계좌에 있는 1원부터 999원까지의 잔돈을 자동으로 저축할 수 있는 소액 저축상품이다. 또 매주 일정 금액씩 증액된 금액을 납입하는 ‘26주 적금’, 입출금 계좌에서 일정 금액을 묶어둘 수 있도록 한 ‘세이프 박스’도 일종의 짠테크족을 겨냥한 상품이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저축을 하고 싶다는 니즈는 늘 있지만 많은 결심이 필요한데, 결심을 안 하더라도 쉽게 시작해서 저축 습관으로 이어지게끔 해보자는 취지에서 내놓은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상품의 가입자 연령은 20, 30대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MZ세대의 마음을 정확히 읽은 셈이다.
금융생활에서도 MZ세대의 짠돌이 또는 알뜰족 스타일이 드러난다. 가계금융복지조사(2019) 통계에 따르면 연령대별 예금 보유율은 30대(45.6%)가 가장 높았다. 취업률이 낮은 20대에서는 31%로 비교적 낮았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연령대별 가구 총소득(월 기준) 가운데 20대의 저축 비중(33.5%)이 가장 높았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달 MZ세대 2233명을 대상으로 한 ‘소비 성향’ 조사에서는 2명 중 1명꼴(51.2%)로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을 추구하는 ‘가성비 소비’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등장에 고민 깊어진 업계
MZ세대의 이 같은 성향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저성장 경제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M세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했다. 취업과 실업의 고통과 일자리 질 저하 등을 체감하면서 대학학자금 부담에다 평균 소득이 낮은 경험도 안고 있다.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리는 Z세대는 어떨까. 저성장 시대 속에서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면서 독립적이고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MZ세대 모두 저성장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이 체득된 부류다.
이런 흐름 속에서 터져 나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MZ세대의 생존본능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 위기 국면 속에서 MZ세대는 어떻게 적응해 나갈까. 이들을 붙잡기 위한 업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