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김여정 후계자설

입력 2020-05-06 04:03

‘김정은 신변이상설’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일 평안남도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건재를 알렸다. 김일성 주석 생일이자 북한 최대 명절인 지난달 15일 태양절에 김일성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불참을 계기로 돌출된 김 위원장 신변에 대한 의문은 20일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의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와 다음 날 미국 CNN방송의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는 보도를 거치며 중태설, 사망설로 번졌었다. 김 위원장의 신변을 둘러싼 지난 보름간의 소동은 북한 관련 보도에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북한 권력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북한 문제가 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라는 점도 다시 알려줬다. 그리고 ‘김정은 이후의 북한’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떠오르게 했다.

그의 유고 가능성이 제기되자 외신들은 일제히 ‘김정은 이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 주목했다. 주요 외신들의 관련 보도 제목을 보면 김정은 이상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김여정이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 북한의 다음 통치자가 될 수 있을까’(파이낸셜타임스), ‘김정은이 없다면 누가 북한을 이끌 것인가’(BBC), ‘여성이 북한을 통치할 것인가? 김의 여동생이 남자들보다 우세하다’(블룸버그), ‘김정은의 건강상 불확실성으로 포커스가 여동생 김여정으로 이동했다’(폭스뉴스), ‘북한의 네 번째 남자는 여성이 될 수도 있다’(뉴요커), ‘김여정의 정치적 부상이 북한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 말해주는 것과 말해주지 않는 것’(CNN) 등 외신들은 경쟁적으로 김여정 보도를 쏟아냈다.

김정은 신변이상설이라는 해프닝이 김여정이 북한에서 갖는 의미를 발견하게 하면서 ‘김여정 후계자설’이라는 예상치 않은 이야기로 이어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김여정을 ‘라이징 스타(rising star)’라고 표현한 것은 이 같은 세계 언론의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김여정 후계자설에서 공통으로 거론되는 여성 문제다. 외신들은 김 위원장의 자식들이 아직 어린 상황에서 김여정이 가장 유력하고 안전한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여성이 북한에서 최고지도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던졌다. 김정은 변고 시 누가 북한을 이끌 것인지 분석한 BBC 기사가 한 예다. BBC는 1순위로 김여정을 언급하면서도 “그러나 김여정은 여성이다. 그 점은 그녀가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북한은 극도의 남성 국가로 성 역할이 경직돼 있다. 최고지도자가 되고 군대를 지휘하는 것은 여성의 역할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후계자 자리에 가장 가까운 동시에 가장 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여성이라는 점은 김여정 후계자설의 핵심 변수이자 최대 흥행 요소이기도 하다. CNN은 “김여정이 김정은을 승계한다면 가장 억압적인 정권의 중심에 여성을 놓는 일이 된다”고 평가했다.

북한 최초의 여성 지도자,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독재적인 국가를 이끄는 젊은 여성, 핵무기를 든 여성 수령, 여성 최고지도자 등장이 가져올 북한 사회의 문화적·성적 변화 등 김여정 후계자론은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김 위원장이 27세의 나이로 권력을 승계하면서 무너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여정은 북한의 여성 문제를 건드린다. 김여정은 여성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김남중 국제부장 njkim@kmib.co.kr